어둡고 긴 삶의 터널을 지나 한국에서 인생의 제 2막을 시작한 용철씨. 딸과 함께 할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밤낮으로 일에 몰두했고, 3년 전, 한국에서 배운 조명 제작 기술로 어두운 밤길 밝은 빛으로 운전자와 보행자를 지켜주는 안전 조명을 개발했습니다. 힘든 과거를 이겨내고 오늘도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김용철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새 삶을 찾아서
용철 씨는 북한에서 체육 구락부(동호회) 활동을 하며 부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년이 되어 사회로 나온 용철 씨는 중국과 무역업을 하며 새로운 세상에서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2002년, 용철 씨는 한국으로 왔습니다. 한국으로 오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더 험난했습니다. 브로커의 잘못된 정보로 베트남 국경주변 정글 같은 산 속을 며칠 동안 물조차 마시지 못 하고 헤맸습니다. 결국 국경 수비대에 잡혔지만 천운으로 북한으로 송환되지는 않았습니다. 고생 끝에 한국으로 온 용철 씨는 ‘무엇이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서 내 힘으로 일어서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희망의 빛, 기술을 배우다
첫 직장인 조명기구 제조업체에서 용철 씨는 성실함으로 어떤 일을 맡겨도 척척 막힘 없이 일을 해냈습니다. 한 번도 조명 제작 관련 기술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특유의 눈썰미로 어려운 기술까지 빠르게 익혔습니다.
"입사 6개월 만에 6년차 과장님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어요. 과장님이 하지 못하는 일까지 제가 도맡아 했었죠."
그렇게 7년간 회사를 다니며 사장님과 동료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커 갔습니다. 용철 씨는 북에 있던 어린 딸을 대한민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하루 3시간씩 잠을 자며, 고급 기술을 익혔습니다. 용철 씨의 실력을 알아 본 한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고, 용철 씨는 고심 끝에 새 직장으로 옮겨 조명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습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밤낮없이 일을 하며 딸을 데려올 비용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마련한 비용으로 용철 씨는 어린 딸을 중국 영사관을 통해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 올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열심히 노력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생활에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딸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선 이전보다 더 많은 생활비를 감당해내야 했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며 대리운전도 하고 우편물 배달도 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늘 생활은 빠듯했으며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버스운전을 하면 지금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용철 씨는 버스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딸과 함께한다는 행복도 잠시, 버스 사고라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용철 씨는 두 식구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운전대를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손을 놓고 있기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습니다. 용철 씨는 다시 용기를 내 안전용품 제작업체에 취업했고, 그 곳에서 지금의 안전조명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었습니다. 어두운 터널 같기만 했던 용철 씨 인생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아빠의 든든한 지원군
용철 씨는 조명을 개발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3년 작은 공장 겸 회사를 차렸습니다. 과거 버스운전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차량의 사이드미러에 다치는 상황을 보고 ‘사이드미러의 반대편에 조명이 있다면 인명사고를 줄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동안 익혔던 자신의 조명 제작기술과 디자인 기술을 접목해 태양열을 이용한 안전조명을 만들었습니다.
혼자 모든 일을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지만 힘든 시기마다 하나뿐인 딸은 언제나 아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아빠의 짐을 덜어주려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의 모습이 용철 씨는 대견하기도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큽니다.
"항상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죠. 지금 딸 대학 때문에 서로 떨어져 살아요. 한 번씩 딸을 만나러 갈 때마다 교통편이 불편하기는 해요. 기프트카가 생긴다면 딸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또 하나의 가족
용철 씨에겐 또 하나의 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직원들인데요. 서로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항상 힘이 됩니다. 기프트카를 지원하게 된 것도 기프트카 광고를 본 여직원의 권유였다고 합니다. 현재 직원 두 명과 용철 씨뿐인 작은 회사지만 가족처럼 똘똘 뭉쳐 함께 큰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용철 씨는 사업 특성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밤에 버스 차고지로 이동하여 안전조명을 장착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교통에 불편함을 겪는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기프트카로 늦은 밤까지 안전하게 직원들과 작업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용철씨의 또 다른 소망입니다.
기프트카와 함께하는 안전 전도사
어느 때보다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용철 씨의 안전조명에 대한 수요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차가 없어서 주문이 들어와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품을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이 많은 제품들을 옮기지?’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특히 선박용, 경운기용 등 농어촌지역에 납품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안타까움은 더 큽니다.
용철 씨는 기프트카를 받게 되면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지역까지 안전조명을 직접 알리러 다닐 생각입니다.
“기프트카에 직접 안전조명을 달고 유통업체를 찾아 다니며 홍보할 계획이에요. 이미 부산시에서는 전체 버스에 적용했던 제품이라 다른 지역도 유통만 제대로 된다면 수주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통이 안정화 되면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다양한 판로를 개척해 나갈 생각입니다."
함께 나누는 빛
용철 씨에겐 또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만든 희망의 빛을 같은 상황의 탈북민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사업을 좀 더 키우게 되면 한국에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빨리 적응 할 수 있게 도와줄 생각입니다. 이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그 기술을 가지고 성공하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을 것이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한국 생활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용철 씨는 탈북민 뿐만 아니라 지역의 어려운 이웃도 돕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덧붙였습니다.
빛은 함께 모여야 더욱 밝게 빛날 수 있습니다. 비록 아직은 작은 불빛이지만 기프트카와 함께라면 앞으로 더 사회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큰 불빛이 될 수 있도록 용철 씨의 도전을 함께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