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박혜숙 씨의 머릿속엔 늘 가족뿐입니다. 고물과 폐지 수거, 갖은 소일거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혜숙 씨는 자신의 몸은 힘들지언정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의젓한 맏딸 정희부터 장난꾸러기 막내 정석이까지 소중한 7남매의 꿈을 맘껏 지원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하는 혜숙 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
박혜숙 씨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이 있습니다. 첫째인 대학생 정희부터 사춘기에 들어선 막내 정석이까지 소중한 7남매와 남편 함일섭 씨가 바로 그 보물입니다. 20여 년 전 혜숙 씨와 남편 일섭 씨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렸습니다. 평생의 인연을 약속하며 가정을 꾸린 자상한 남편과 살뜰한 아내는 늘 사랑이 넘쳐 7남매라는 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사 서로를 다독여주는 가족과 달리 현실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도전 정신이 강하고 누구보다 씩씩한 혜숙 씨이지만 굴곡진 인생에 눈물 훔친 날이 적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겨운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 오늘까지 올 수 있었어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요. 어려운 순간에도 서로의 버팀목이 되고, 힘이 되는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더구나 그런 가족이 8명이나 되는 저는 부자나 다름없어요.”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 틈에서 미소를 띤 혜숙 씨가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웃어 보이기까지 참고 견뎌야 했던 인생의 난관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혜숙 씨는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잠시 말을 거두었습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
풍족하진 않아도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살던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 일섭 씨는 건설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하지만 IMF로 부도를 맞게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까지 악화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쇠약해진 남편을 대신해 혜숙 씨가 문밖으로 나서야 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손 놓고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음식 솜씨를 자랑했던 혜숙 씨는 돈가스를 비롯해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음식점을 차렸습니다. 혜숙 씨의 야무진 손끝에서 나오는 바삭한 돈가스, 상큼 달콤한 생과일, 뜨끈한 토스트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어린 자녀들을 맡길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아 첫째와 둘째는 양손에 붙들고, 셋째는 등에 업은 채로 장사해야 했습니다. 일에만 집중해도 힘들었을 장사를 어린아이까지 돌봐가며 해낸 혜숙 씨의 몸은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장시간의 노동으로 팔목과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 온몸이 종일 쑤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단함도 가족만을 생각하며 꿋꿋이 이겨낸 혜숙 씨입니다.
“이 악물고 열심히 해서 그런지 제법 장사가 잘 됐어요. 특히 돈가스 소스를 독특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식당 월세가 올라 상황이 어려워졌어요. 결국,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사를 접어야 했죠.”
가게를 정리한 후 생계가 막막해진 혜숙 씨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마땅한 벌이가 없는 상황에서 빚만 계속 늘다 보니 어려운 형편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상으로 진로를 바꾼 첫째 정희를 제외하고는 6남매 모두 체육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둘째인 정혁이와 다섯째 정재, 여섯째 정욱, 막내 정석이는 유도, 셋째 정우는 검도, 넷째 정연이는 기계체조를 배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6남매는 각종 시도 대회는 물론 전국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혜숙 씨입니다.
“아이들의 꿈을 지원하려면 훈련비용을 비롯해 교구비, 대회 참가비 등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든든하게 지원해주지 못해 늘 미안했어요. 아이들이 새 도복을 입는 게 소원인데, 그 작은 소원도 이뤄줄 형편이 못돼서 마음이 아팠죠.”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아이들이 진로를 포기해야 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혜숙 씨는 이런 아이들을 보며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맘껏 재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싶어요. 얼마 전 정재가 두 명의 동생에게 ‘운동 대신 공부하면 안 되겠냐’며 부탁하는 걸 봤어요. 정말 안쓰럽고 미안했어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나갈 수 있도록 번듯한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성공 가능성의 발견
혜숙 씨 부부는 파지, 공병, 고철 등을 모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남편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족을 위해 집을 나서곤 합니다. 여름에는 과일을, 겨울에는 지역 특산물인 과메기를 판매하며 어려운 가계 상황을 극복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지인이 우엉차와 도라지차 판매를 제안했습니다. 직접 재배한 우엉과 도라지를 차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 지인은 두터운 인맥을 자랑하는 혜숙 씨를 통해 판로를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혜숙 씨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제안이었는데, 큰 자본 없이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차의 특성상 계절에 상관없이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혜숙 씨는 장고 끝에 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넓은 인맥을 활용해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품질 좋은 제품에 혜숙 씨의 탁월한 장사 수완이 더해지니 우엉차, 도라지차를 찾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성공 가능성을 엿본 혜숙 씨는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사업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안정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맘껏 원 없이 뒷바라지하는 희망 가득한 미래도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희망의 기회를 만나다
하지만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활동 반경을 넓혀주는 사업용 차량이 없어 숱한 판매기회들을 놓친 혜숙 씨였습니다. 차량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혜숙 씨는 여러 방면으로 차량을 마련할 길을 알아보던 중 사회복지사를 통해 기프트카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프트카를 받게 된다면 좀 더 안정적으로 판매 사업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동안 쌓아온 인맥으로 단골손님이 제법 확보가 된 상태거든요. 본격적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해 7남매의 꿈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싶어요.”
혜숙 씨는 기프트카로 사업이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면 아홉 가족이 다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을 해보고 싶다며 밝은 웃음 짓습니다. 지금의 밝은 미소가 온 가족 얼굴에 가득하도록, 여러분도 혜숙 씨의 위대한 도전을 함께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