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찬바람을 몰고 오던 어느 날, 대구에서 한 남자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한국전쟁으로 고향인 황해도를 떠나 대구에서 살고 있던 실향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남자는 길에 쓰러진 한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허약한 몸으로 차디찬 길바닥에 쓰러져있던 여자는 다름 아닌 서태실 씨의 어머니였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인근 마을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했고, 당시 남편과 결별한 채 임신 중이었던 서태실 씨의 어머니는 치료를 받던 중 서태실 씨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서태실 씨의 어머니가 출산한 뒤에도 매일같이 병원에 찾아와 간호해주던 남자는 오갈 데 없던 딱한 사정의 모녀를 가족으로 맞이해주었고, 함께 시골로 내려가 단란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그 남자는 어린 서태실 씨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셨던 아버지는 어머니께서 편찮으실 때면 몸에 좋다는 약재나 음식을 모두 구해와지극 정성으로 보살폈고, 집안일 역시 많이 돕는 남편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서태실 씨의 아버지는 그렇게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어머니 역시 그런 아버지를 평생 존경하며 따르셨고,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러 다닐 정도로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금실이 좋으니 가정은 당연히 화목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일, 부모님이 사이 좋게 앉아서 자식들이 입을 옷을 직접 만들어 주신 일은 아직도 서태실 씨에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서태실 씨는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럽게 남을 돕고 사는 법을 익혔습니다. 학창시절,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큰 보람을 느꼈고, 졸업 후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봉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처럼 유년 시절을 보내며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의 마음을 한가득 물려받은 서태실 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창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 서태실 씨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창원에서 새 삶을 시작한 서태실 씨의 첫 번째 직장은 한 중학교의 서무과였습니다. 밝은 성격 덕에 일은 적성에 잘 맞았고, 비교적 안정적인 일이었기에 그녀는 제법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또 하나의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스물셋이 되던 해, 친구로부터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눈에도 선한 인상인 남편은 서태실 씨에게 호감을 보였고, 서태실 씨도 남편의 따뜻한 마음에 이끌려 두 사람은 2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서태실 씨는 어린 시절 보아온 부모님처럼 자신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 자란 서태실 씨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가장 좋은 친구인 형제자매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네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며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서태실 씨의 꿈은 현실이 되어갔습니다. 그녀의 남편 역시 더없이 너그럽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 가발을 맞춤, 제작하는 일을 하며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남편은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빚더미에 올라앉고 말았습니다. 집안 살림은 날이 갈수록 위태로워졌고, 부부 사이에 말다툼도 잦아졌습니다.
네 아이를 데리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서태실 씨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방 보조와 미용실 보조, 식당 서빙, 전단 배포와 신문 배달, 보험 설계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루에 두, 세 가지 일을 하며 오로지 아이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2,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어려웠던 살림은 아주 조금씩 나아졌고 작은 중고차도 한 대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다 끝난 것만 같았던 시련은 다시 한 번 또 다른 모습으로 서태실 씨의 가족에게 찾아왔습니다.
2006년의 어느 날, 정말 모처럼만에 시간을 내어 서태실 씨 가족은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태우고 들뜬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던 서태실 씨에게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가 찾아왔습니다. 마주 오던 대형 트럭이 서태실 씨의 차를 덮친 것이었습니다. 트럭 운전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이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족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이가 부러지는 등의 중경상을 입었고 서태실 씨는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오랜 치료 끝에 퇴원하고 난 뒤에도 3년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정도의 중상이었습니다.
가장인 서태실 씨의 몸이 불편해지니, 당장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길이 막막해졌습니다. 예전처럼 활동적인 일은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휘청거렸던 서태실 씨를 잡아준 것은 네 명의 아이들이었습니다. 특히 첫째 유진 양은 늦은 밤 어둠 속에서 홀로 울먹이고 있던 서태실 씨에게 다가와 말없이 손을 잡으며 힘을 주었습니다.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의 밤을 보내고 난 후, 서태실 씨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직한 장녀 유진 양은 예전부터 일하러 나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며 엄마 서태실 씨가 경제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장한 딸이었습니다. 그만큼 동생들에 대한 사랑도 각별하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지금은 늘 A+를 받아올 만큼 자기 일에도 성실하다고 합니다. 또 유선 양은 서태실 씨를 똑 닮아 베풀기를 좋아하고, 사랑도 잘 표현하는 마음 따뜻한 둘째 딸이랍니다.
이제 고3 수험생이 된 셋째 딸 유미 양은 한창 예민할 시기이지만 엄마가 힘들어할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면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애교 많은 막내아들 은수 군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하며 합창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을 만큼 재주가 많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서태실 씨의 곁을 든든히 지켜준 덕분에 그녀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자신을 위해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진정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칠흑같이 어둡던 서태실 씨의 앞날에 새로운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드시 다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매일 고민하던 서태실 씨에게 경남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곳에서 상담과 취업교육을 받으며 소극적으로 가라앉았던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 갔습니다. 평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제과제빵 일을 배우기 시작한 서태실 씨는 정성 들여 반죽한 빵이 오븐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유달리 좋아했고, 자신의 희망도 얼마든지 다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만 보고 살았던 서태실 씨는 점차 미래를 내다볼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빵사로서의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던 서태실 씨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기프트카 주인공에 도전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서태실 씨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작은 꿈은 그때부터 한없이 부풀어가기 시작했고, 그간 배운 제빵 기술을 살려 기프트카에서 츄러스 등 빵을 판매하고 향긋한 커피도 함께 팔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워놓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프트카에 신청서를 받아든 서태실 씨는 그때부터 어떤 자리가 좋을지 물색하기 시작했고, 창업 아이템을 구체화하며 사업계획서를 작성했습니다. 사업계획서가 무엇인지 몰랐던 서태실 씨는 이론부터 공부한 후, 며칠밤을 새워 사업계획서를 직접 써 내려가며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서태실 씨는 기프트카 주인공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서태실 씨는 기프트카를 받으면 혼자 사시는 아버지와 함께 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서태실 씨의 아버지는 '앓아눕지 않는 한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는데, 요즘은 일거리가 없어서 고민하시던 참이었습니다. 서태실 씨는 아버지와 사업을 같이 하게 되면, 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함께 사시길 극구 반대하시던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모시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기프트카를 통해 아버지를 편히 모시고, 네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말하는 서태실 씨. 오랜만에 찾아든 희망의 빛이 앞으로 계속 그녀의 앞을 비추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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