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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김동환 씨] 정성스레 발효시킨 방울증편처럼 부풀어 오를 행복을 기다리다.

2014-01-02 뷰카운트5118 공유카운트0





충청북도 충주,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동환 씨는 중장비 기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전국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보금자리는 때마다 변했지만, 김동환 씨는 부족함 없는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동환 씨의 아버님은 중장비 기사 일을 그만두고 가족과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사업은 초반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사업은 금세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끝내 살던 집까지 경매로 넘어가게 되며 가족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일푼으로 쫓겨나 이웃집의 빈방에 짐을 푼 김동환 씨 가족은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을 한 김동환 씨의 아버지는 외국으로 건너가 일을 해 돈을 부쳐주셨고, 김동환 씨의 어머니는 집에서 떡을 해 시장에 가져다 팔며 어려운 살림을 꿋꿋하게 꾸려 나가셨습니다.
김동환 씨 역시 어려운 가계에 짐이 되지 않으려고 20리나 되는 등하굣길을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오후에 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우산 없이 집까지 홀로 걸어가며 빗물과 함께 몰래 눈물을 삼켰습니다. 물론 차비가 있을 때도 그 돈을 모아두었다가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실 때마다 살짝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1학년. 아직 한창 꿈꿀 나이의 소년이었던 김동환 씨는 그렇게 조금 일찍 철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와 아직 어린 두 동생을 두고 20살이 되자마자 군에 입대한 김동환 씨는 2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빠르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제대의 기쁨보다는 집에 돌아가 다시금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제대 후 실제로 김동환 씨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계속된 구직실패로 낙담해있던 김동환 씨는 용돈이라도 벌자는 심정으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직원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던 커피숍 단골손님의 소개로 김동환 씨는 컴퓨터 부품 유통회사를 소개받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자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심에 김동환 씨는 친구와 함께 새벽시장에서 채소배달을 병행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고, 그럼에도 무리하게 일을 강행했던 김동환 씨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 또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해던 김동환 씨는 친구의 소개로 원자력발전소의 기능공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기능공 중 용접기사가 수입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동환 씨는 생전 해본 적 없던 용접기사에 지원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무엇 하나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자신의 현실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바라보았던 김동환 씨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당장 현장에 나가 일할 수 있는 기능직을 선택했던 것이었습니다.



3년간 용접기사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 김동환 씨는 그제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던 행복을 조금씩 꺼내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1998년, 김동환씨는 결혼식을 올리고 곧 사랑스러운 두 딸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한때가 계속되기를 바랐던 김동환 씨의 소망은 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결혼 후 전통 떡집을 열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게를 운영했던 김동환 씨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고 합니다. 자신의 인생 앞에 놓인 난관을 헤쳐나가기에도 벅찼던 그에게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어쩌면 무리였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는 아내와 수시로 마찰을 빚었고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 막연한 우울함에 모든 것을 세상의 탓으로 돌려보기도 했다던 김동환 씨. 하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직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을 위해 살자고 마음먹은 김동환 씨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홀로 아이들을 양육하며 일을 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계절별로 어떤 옷을 챙겨줘야 하는지, 여자아이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생소하기만 했다는 김동환 씨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잘 모르는 부분들은 도서를 찾아보며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 두 딸과 초보 아빠의 생활은 좌충우돌 끝에 한 단계 성장해있었습니다.



현재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환 씨는 공부도 집안일도 스스로 척척 해내는 두 딸아이 덕분에 일에 더 매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유독 떡 중에서도 방울증편만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 일본 도쿄를 방문한 그는 그들의 장인정신과 전통문화 보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어 하는 방울증편의 장인이 되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습니다. 자신만의 특별한 방울증편으로 벌써 실용신안까지 받아놓은 김동환 씨는 방울증편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합니다.




김동환 씨의 방울증편은 지역 일대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떡이었지만, 소량주문으로만 판매하고 있을 뿐 차량이 없어 대량주문은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찾아온 기프트카는 지금까지의 고통과 시련이 남기고 간 선물이자 기적이라 말합니다.



김동환 씨는 이번 기프트카의 주인공으로 선정되면서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깊은 애정을 가지고 발효시키며 잠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방울증편과 같이 인생도 그렇게 많은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는데요. 김동환 씨는 기프트카와 함께 더 나아질 미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예쁘고 맛있게 부풀어 오르는 방울증편처럼 김동환 씨의 행복도 한없이 커지리라 믿습니다!


후기보기 ☞ http://gift-car.kr/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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