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민옥선 씨는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119구급대원이었던 민옥선 씨의 남편은 배려심 깊고 진중한 사람이었습니다. 험한 사고 현장을 자주 보게 되는 구급대원 일은 마음이 여렸던 남편에게 감당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꾹꾹 참아가며 늘 밝은 모습만을 보여 주려 했던 남편이 민옥선 씨는 언제나 존경스러웠다고 말합니다.
민옥선 씨의 남편은 영어 교습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며 과외를 해도 될 만큼 실력을 쌓게 된 남편은 첫째 아들 호익이가 네 살이 되던 해, 마침내 구급대원 일을 그만두고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교습소를 운영한 지 두 달도 안 될 무렵이었습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희망찬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건강했던 남편은 갑자기 쓰러졌고 그렇게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준비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 앞에서 민옥선 씨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민옥선 씨에게는 큰아들 호익이와 작은아들 홍현이, 그리고 영어 교습소의 문을 여느라 진 빚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갑자기 닥친 시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막막한 상황을 헤치고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가야만 했습니다.
살림만 하던 민옥선 씨는 이때 비로소 첫 사회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전세금조차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옥선 씨는 급한 대로 시댁으로 들어가 1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공장 일을 시작한 그녀였지만 남편 없는 시댁에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결국, 민옥선 씨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온전한 자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무작정 복지기관을 찾게 되었습니다.
민옥선 씨는 시댁을 나와 어려운 모자가정의 생활을 위해 마련된 모자원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아이들을 봐주는 덕분에 그녀는 경제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일이란 일은 전부 했다고 합니다. 낮에는 건물 계단청소와 세차를 했고 밤에는 신문 배달과 목욕탕 청소를 했습니다. 휴일조차 쉬지 않고 잔칫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5년 동안 착실하게 한 푼 두 푼 모아 온 민옥선 씨는 두 아들을 데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원룸이었지만 온전히 스스로 돈을 벌어 마련한 소중한 집이었습니다.
특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만 해오던 민옥선 씨는 두 아들의 대학진학과 장래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데, 그때 민옥선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도배 일이었습니다. 입주청소를 하다가 알게 된 도배 일은 경력이 쌓일수록 시급이 늘어났기 때문에 일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여성 도배사를 원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민옥선 씨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이번 기회에 도배 일을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업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민옥선 씨는 도배 학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30만 원 정도 되는 학원비를 낼 돈이 없어서 망설이게 됐어요. 그런데 함께 일하며 친하게 지냈던 분이 선뜻 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염치불구하고 받았어요. 받아서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갚자고 생각했죠. 그리고 얼마 전에 그분 집에 가서 무료로 도배를 해드렸어요. 시간이 좀 흐르긴 했지만,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뿌듯했어요.”
도배 일을 배운 민옥선 씨는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습니다. 새벽 5시에 두 아들의 밥상을 차려놓고 동료의 차를 타고 타지로 가서 종일 도배를 했습니다. 다행히 일감은 제법 많았습니다. 혼자 사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여성 도배사를 원하는 고객이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민옥선 씨가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까닭에 금세 입소문을 탔던 것입니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세심함, 여기에 민옥선 씨의 성실함이 더해져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체력의 한계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웬만한 남자들도 힘든 것이 도배 일이라고 하는데, 매일 같이 무거운 자재들을 들고 천정과 높은 벽에 오랜 시간 동안 꼼꼼히 벽지를 바르다 보니 민옥선 씨는 목 디스크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통증은 목에서 팔, 다리까지 내려왔습니다.
굳은 의지로 다시 일을 시작한 민옥선 씨에게 이번엔 건강이 아닌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차량이 없어 일을 못 하는 날이 많아진 것이었습니다. 차편이 없는 곳은 일하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지인의 차를 항상 얻어 타야 하는 입장이니 일거리가 들어와도 일정이 맞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거리가 줄어들어 전전긍긍하고만 있던 민옥선 씨에게 기프트카의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씩씩하게 걸어온 민옥선 씨에게는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기프트카의 주인공으로 민옥선 씨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가장 크게 기뻐한 것은 큰아들 호익이와 작은아들 호현이었다고 합니다.
장남 호익이는 훤칠한 인물만큼이나 성격도 좋고, 교우관계도 좋아서 주변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민옥선 씨는 항상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챙겨야 하는 호익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하는데요. 불만보다는 늘 엄마 생각이 먼저인 큰아들 호익이. 나중에 졸업하면 심리 상담사가 되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나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말벗이 되어주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장남입니다.
둘째 홍현이는 엄마의 비타민이자 집안의 재롱둥이입니다. 형의 말을 항상 존중하고 따르는 이 의젓하고 듬직한 막내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이토록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둘이나 있으니 민옥선 씨에겐 더 이상의 두려움도 좌절도 없습니다. ‘무너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도,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더라’며 웃어 보이는 민옥선 씨, 그리고 그녀의 보석 같은 두 아들의 앞날에 늘 행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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