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 씨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을 짊어지긴 했지만 나름 행복했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양승 씨가 초등학생이 되던 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면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극심한 생활고에 어머니께서 살림을 꾸리기 위해 밖에 나가 일을 하시게 되었고 어린 양승 씨는 늘 혼자였습니다.
양승 씨는 그 무섭던 호롱불마저 그리워지는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같이 살던 집의 재개발이 진행되었고, 이사 갈 돈이 없었던 그와 어머니는 재개발로 허물어진 집터 위에 나무판자로 삼각형 집을 지어 살아갔습니다. 시린 바람을 맞으며 잠을 잘 때면 불씨마저 꺼져버린 호롱불이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욱 깊어진 생활고로 인해 양승 씨의 어머니는 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런 탓에 양승 씨는 학창시절 도시락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풍이나 운동회를 할 때도 종일 식당 일을 하시는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가을소풍 날, 점심시간이 되어 다른 아이들이 김밥을 맛있게 먹을 때, 그는 배가 고파 물로 배를 채우고자 수도가 있는 곳을 찾아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애써 시간을 내어 도시락을 싸오신 어머니를 발견했답니다. 어머니는 소풍날 굶고 있을 양승 씨가 걱정돼 도시락을 싸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그날의 어머니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양승 씨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홀어머니의 생활고를 뒤로하고 방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양승 씨의 짧은 방황도 끝이 났습니다. 오랜 기간 쉬지 않고 일을 해온 탓에 연약한 어머니의 몸은 상할 대로 상해있었고, 적은 수입으로는 더 이상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양승 씨는 오히려 잘됐다는 심정으로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테이프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여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건축 일을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게 된 양승 씨는 월셋방이지만 어머니와 함께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해 두 아들도 얻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 두 아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그 시절이 양승 씨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몸이 고된 건설 현장 일이기는 했지만 꼼꼼한 일 처리와 원활한 대인관계로 현장관리직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정된 가정을 꾸려갈 즈음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건설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인부의 실수로 큰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책임을 지고 일에서 물러난 그는 좌절하지 않고 바로 일거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낮에는 중국집 배달, 새벽에는 신문 배달, 우유 배달 등을 하며 가정의 생계를 이어가는 데 부족함 없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 즈음 또 다른 큰 불행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2000년, 양승 씨의 어머니가 자궁경부암 초기 판정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받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었지만, 저혈압이 심했던 양승 씨의 어머니는 수술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10여 년 동안 병원비를 감당해가며 어머니를 병원 치료실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오랜 병환으로 생활비는 점점 더 부족해졌고, 어린 두 아들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습니다. 결국, 아내와도 갈등을 빚게 되며 양승 씨는 이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양승 씨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돌아가시기 전 3개월간 어머니를 집에서 직접 모셨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곁을 지켰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는 양승 씨. 어머니가 젊으셨을 때는 형편이 어려워 가족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늙으셨을 때는 몸이 불편해 좋은 세상구경 한번 못 시켜 드린 것이 너무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양승 씨는 이제 자신에게는 두 아들 밖엔 없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를 닮아 마음도 몸도 건강하고 얼굴도 아주 잘생긴 두 아들은 크면서도 속 한 번 썩인 적 없다고 합니다. 그런 두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양승 씨는 아들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에 웃음이 넘쳐납니다.
그의 두 아들은 모두 태권도 유단자로 2단에서 3단으로 올라가는 승급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이번에 서울시 전체 태권도 품세 대회에서 3등을 할 정도로 실력자입니다. 태권도도 잘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둘째는 돌아가신 할머니와도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일을 나가고 없는 양승 씨를 대신해 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벗이 되어드렸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자식들을 키우는 기쁨으로 열심히 살아가던 양승 씨는 2009년부터 서대문지역자활센터의 자활사업에 참여하며 과일을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수입은 생각보다 넉넉하지 않았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오늘담은과일’ 이었습니다. ‘오늘담은과일’은 매일 신선한 과일을 깨끗한 용기에 담아 하루 먹을 분량을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에게 판매하는 것인데요. 차량이 없어 판매가 쉽지 않던 차에 양승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프트카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기프트카의 주인공으로 선정되기를 바라며 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요?
기프트카 주인공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양승 씨는 뛸 듯이 기뻤다고 합니다. 주문한 곳에 배달할 자동차가 생긴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사업가로 거듭날 수 있는 배움과 체험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사업에 대한 경험부족과 예상치 못한 난관들로 어려움을 겪었던 탓에 양승 씨는 기프트카 창업교육이 정말 기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양승 씨는 지난 과거의 고난과 역경을 뒤로한 채 기프트카와 함께 앞으로 달려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매일 신선한 과일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더불어 평생을 몸을 사리지 않고 지켜온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지키고 싶다고 합니다. 누구보다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그의 앞날에 신선한 과일 향처럼 달콤새콤한 삶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기프트카가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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