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울산, 칠곡 등등 어느 시장엘 가도 우리 집 농산물만큼 좋은 물건은 없어요.”
경상북도 군위군의 작은 농촌마을. 올해 5월, 개인회생을 마치고 무일푼으로 밑바닥부터 다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동우 씨의 얼굴에서 뭔지 모를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어려운 살림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온 이동우 씨와 누엔티튀짱 씨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젊은 시절 꿈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삶은 도착지 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는 듯했습니다. 지금은 87세의 노모를 모시고 베트남에서 온 아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신감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였다고 자부하는 이동우 씨는 19살 때 혼자 고향을 떠나 대구로 향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살 곳도 없었던 지라 무작정 대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숯불갈비 집을 찾아가 일을 배우며 기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의욕이 앞섰던 탓인지, 뭘 배우려고 할 때마다 동료들에게 냉대와 수모를 당했습니다. 1년 동안 설거지 외엔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었던 동우 씨는 처음으로 막막한 기분이 들었고 도망치듯 입대를 결심하게 됩니다.
군 제대 후 동우 씨는 대구의 숯불갈비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처음으로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기합이 단단히 들어간 동우 씨를 모두 환영해주었고 그곳에서 3년 동안 반죽 일과, 냉면, 숯 피우는 기술들을 배우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착실하게 돈을 모아 온 동우 씨는 친형님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기술력과 친형님의 사업수완을 합친다면 분명 성공할 거란 확신이 들었던 것입니다. 예상대로 사업은 성공적이었습니다. 3년이란 기간 동안 8,000만 원이라는 큰 돈을 벌게 된 동우 씨는 형을 떠나 혼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갈비 집을 운영해 본 적이 없는 동우 씨는 계속된 실패를 경험하게 되고 가진 돈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시 대구의 숯불갈비 집을 찾은 동우 씨는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대구 막창 집을 차려 2년 정도 운영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때 동우 씨의 나이 31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미 바닥을 넘어 아래로 아래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길은 있었지만 카드 빚, 대출금으로 어느 한 곳도 마음이 편한 곳이 없었고, 막다른 길이었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막창 가게를 운영하면서 모아둔 돈도 모두 잃고 많은 빚을 지게 된 동우 씨는 고향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폐가 안 좋으셨던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한 것입니다. 4남 1녀 중 홀로 미혼이었던 동우 씨는 가게를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어머니와 번갈아 가며 아버지 병시중을 들었습니다.
효자 아들 이야기만 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으시는 87세 문순늠 할머님. 귀가 어둡긴 하시지만 아직도 고추 밭, 마늘 밭에 나가 일을 하실 정도로 정정하십니다.
고향에 내려온 동우 씨는 여름엔 농사일을 하고 겨울엔 군청 일을 도와 숲 가꾸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1년 동안 열심히 일해도 평균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밖엔 벌지 못했습니다. 집 마당에 안 쓰는 창고를 개조해서 소를 키우면 돈이 될까도 싶어 시작했는데, 복돌이, 복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정이 들어 팔지도 못하고 결국 논에 줄 퇴비나 얻는다는 생각으로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때, 하루하루가 단조롭고 지루했던 동우 씨의 일상에 단비와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쁜 아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온 천사 같은 누엔티튀짱 씨를 말이죠. 동우 씨는 난생처음 ‘첫눈에 반한 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다며 쑥스러운 얼굴로 당시의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아내에게 반해 결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2011년 말에 결혼식을 올리고는, 베트남 장모님 댁에서 1주일을 머물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부갈등도 전혀 없을 만큼 아내는 착하며 성실했고, 어머니 역시 그런 아내를 친 딸처럼 예뻐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저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아들과 함께 알콩달콩 잘 살아주는 며느리가 한없이 예쁠 따름이라고 합니다.
아내 누엔티튀짱 씨는 워낙 적응력이 좋고 눈치가 빨라, 말이 안 통할 때도 몸짓 눈짓으로 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남편을 통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배우기 시작했고, 복지관에서도 한글을 배우며 빠르게 적응해갔습니다. 처음 낯선 땅에 시집와 매일같이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꽃띠 처녀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곧 태어날 한별이(출산 예정인 아이의 태명)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남산만 해진 배를 붙잡고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면 절로 아빠 미소를 짓게 된다는 이동우 씨. 요즘은 임신한 아내를 위해 과일이며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을 사다 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데요.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사다 주는 남편과 농사일로 무리하지 않도록 신경 써주시는 시어머니가 있어 누엔티튀짱 씨는 사는 게 즐겁다고 합니다.
곧 있으면 이동우 씨 부부에게도 기프트카가 생깁니다. 직접 지은 농산물을 기프트카에 싣고 함께 판매하러 다니게 될 텐데요. 최고 품질의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더불어 넉넉한 인심까지 챙겨드릴 수 있어 앞으로가 무척 기대된다는 이동우 씨 부부, 기프트카와 함께라면 포항, 울산, 칠곡, 영천 일대의 1등 농산물판매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금방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동우 씨와 아내 누엔티튀짱 씨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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