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찾은 낯선 땅은 이제 또 하나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견뎌온 지금 따뜻한 햇살이 그녀를 내리쬐며 새로운 길로 안내합니다. 눈물 대신 웃음으로 가득할 인생의 전환점, 바로 기프트카를 통해서 말이죠. 충청 지역에서 호떡 맛의 진수를 선보이고 싶다는 띠엥속밧 씨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
캄보디아 북쪽의 작은 마을 깜봉참에는 띠엥속밧 씨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합니다. 부모님과 동생들을 포함한 여섯 명의 식구는 농업에 종사하며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끈끈한 가족애를 자랑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서 온 휘영 씨를 만나며 띠엥속밧 씨는 인생의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낯선 나라, 낯선 문화이지만 휘영 씨와 함께라면 자신 있었다던 띠엥속밧 씨. 그렇게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휘영 씨와의 결혼을 택한 그녀는 2006년 한국에 도착해 오손도손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소중한 반쪽 남편과 현주, 다운, 막내 건희까지 남부럽지 않은 가족을 꾸린 그녀. 하지만 경제적 문제는 이따금씩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김 공장 아르바이트, 식당 서빙 등을 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든 적도 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을 권유받기 여러 번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차 커가며 교육비도 만만치 않은데 부부가 모두 건강상의 문제로 제대로 근무할 수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죠.
“경제적 어려움만큼이나 걱정되는 건 국적 문제예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지만 안타깝게 아직 한국 국적을 얻지 못했어요. 국적을 취득하려면 가구원이 주택을 소유하거나 일정 금융 재산을 보유해야 하는데 저희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지 않거든요. 외국인 비자가 내년이면 만료돼 요즘 걱정이 커요.”
띠엥속밧 씨가 조심스레 속내를 이야기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 남편 휘영 씨가 기초생활수급권자에서도 탈락하며 띠엥속밧 씨 가족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아픔을 견디게 해준 사랑하는 가족들
“여러 문제가 겹치며 아내 마음을 힘들게 해서 미안할 뿐이에요.”
남편 휘영 씨가 곁에서 아내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날을 잊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휘영 씨에게 누구보다 띠엥속밧 씨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충청남도 보령이 고향인 휘영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일찍부터 조각배를 타고 어업에 나섰지만 오히려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기회로 만들어 갔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일찌감치 항해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군 제대 후에는 여러 경력을 바탕으로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5대양 6대주를 누리며 배를 타고 싶다는 꿈은 늘 그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배를 타기 시작한 휘영 씨. 하지만 2000년 1월, 모두가 새해의 감격에 젖어있을 무렵 휘영 씨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배 조타실 옆에 있던 스크루에 쓸려 오른쪽 다리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죠. 발목 아래가 절단된 상황이라 간신히 가죽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걸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던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당장 의족을 끼우는 건 싫었어요. 해볼 수 있을 만큼 노력해보고 싶었죠. 수술을 통해 다리에 살을 이식하고 세 군데에 걸쳐 심을 박았어요.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다행히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고 전후로 휘영 씨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보험 하나 없이 긴 시간 병원비를 충당해야 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고, 오랜 수술과 치료로 인해 몸과 마음도 쇠약해졌습니다. 그에게 지체장애 판정을 받은 것보다 힘들었던 건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이었습니다. 특히 무리하게 움직인 날은 관절에 신호가 오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면 마땅한 치료법 없이 한 달에 두어 번 처방 받는 약만으로 간신히 진통을 덜어낼 뿐입니다.
노력의 힘을 믿어요
아픈 남편을 보며 띠엥속밧 씨는 더 고민할 수도,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사회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자립을 위해 적당한 일거리를 떠올리던 중 부부는 호떡 장사를 떠올렸고, 한 달 전쯤부터는 지인의 차량을 빌려 장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5년 전, 전주의 유명 호떡집에서 두 달 간 머물며 기술을 전수받은 휘영 씨가 다시 보령으로 건너와 창업을 한 뒤 몇 달 동안 영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리를 잡아갈 무렵 띠엥속밧 씨가 임신을 했고 휘영 씨의 통증도 다시 심해져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몇 년이 흐르고 경제적 상황이 더 어려워진 지금 부부는 심기일전해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됐습니다.
호떡과 어묵, 순대 같은 기본 분식류를 판매 중인데, 이중 호떡은 부부의 필살기 메뉴입니다. 띠엥속밧 씨 표 호떡의 키포인트는 바로 반죽! 찹쌀이 들어가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데 마치 얇은 피자 도우 같은 맛도 느낄 수 있다고 하네요. 또 기름 양이 어마어마한 일반 호떡과 달리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튀겨내 담백하고 질리지 않는 맛도 특징입니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맛보면 어김없이 다시 찾는다는 띠엥속밧 씨네 호떡집. 그녀의 자부심도 남다릅니다.
“단기간이지만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 뿌듯해요. 손님들과 만나며 자신감도 많이 생겼어요. 요즘은 튀김 레시피를 연구 중인데 앞으로 커피, 옥수수, 핫도그 등 계절별 메뉴도 다양하게 구성해볼 생각이에요.”
부부는 호떡 장사에서도 찰떡궁합을 자랑합니다. 조리와 판매는 아내 띠엥속밧 씨의 몫이고 반죽과 서빙, 뒷정리는 남편 휘영 씨가 담당합니다. 하루 종일 무리해서 몸을 쓸 수 없는 휘영 씨의 어려움을 알기에 띠엥속밧 씨는 남편의 곁을 든든히 지키며 장사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기프트카는 우리 가족의 희망 줄기
한 달 동안 열심히 호떡을 팔며 띠엥속밧 씨는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 차량을 빌려준 지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 개인 차량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홀로 수없이 되새긴 이 말이 통해서일까요? 띠엥속밧 씨는 지역 시청 담당자의 소개로 기프트카를 알게 됐고, 벼랑 끝에서 천군만마를 얻게 됩니다. 남편과 함께 기프트카를 통해 스스로 자립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공부도 맘껏 시켜주고 싶다는 띠엥속밧 씨. 무엇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마음 편히 생활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언덕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기프트카로 최선을 다해 자립할 거예요. 평일에는 인근 주택가, 주말에는 시골 장이나 축제에 찾아가서 영업할 예정인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았을 때 반가워하고 기다려주는 손님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꾸준히 만나는 단골들이 언젠가 저희의 최고의 재산이 되어있을 것 같아요.”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여기에 힘입어 자연스레 매출을 높이는 것이 부부의 목표입니다. 자신감 충만한 모습에서 가족들의 밝은 미래가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엄마, 아빠표 호떡을 제일 좋아하는 아이들, 다정한 남편 그리고 이제 새로운 가족이 된 기프트카와 함께 할 띠엥속밧 씨의 앞날을 여러분도 같이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