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숙씨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세상과 운명을 달리한 어머니, 그리고 건설 일용직으로 얼굴조차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던 아버지.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 장용숙 씨는 무척이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오갈 곳이 없었기에 할머니 댁과 친척 집을 전전하게 된 그녀는 가족의 품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홀로 어린 딸을 키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건설 일을 해야 했던 장용숙 씨의 아버지는 딸이 안쓰러웠지만 어찌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장용숙 씨가 머물던 친척 집도 살림살이가 풍족한 편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보살핌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녀의 학창 생활은 중학교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코흘리개의 모습으로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렀던 친구들과 고등학교 졸업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용숙 씨가 처한 환경은 그녀의 소박한 소망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중학교를 중퇴하게 된 장용숙 씨는 친척 집에서 집안일을 돕다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본격적으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이었지만 지금까지 키워준 친척 어른들께 보답하려는 마음에 생산직, 화장품 판매, 돌잔치의 풍선 만드는 일, 아동복 판매 등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정신 없이 뛰어다녔습니다. 하는 일마다 척척 해내는 그녀에게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총명하다며 보는 사람마다 칭찬 일색이었지만, 중학교 중퇴라는 학력은 장용숙 씨가 일을 선택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더는 친척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이 죄송스러웠던 장용숙 씨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늘 가슴 한구석에 맺혀있던 외로움도 잊히는 듯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들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앞만 보며 달려갔던 장용숙 씨의 삶에 선물과도 같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충청도의 한 식당, 지금의 남편은 장용숙 씨가 일하던 식당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장용숙 씨를 보고 첫눈에 반한 남편, 이성희 씨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그녀를 보기 위해 꼭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이성희 씨의 선배는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1년 동안 연애를 한끝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장용숙 씨는 남편을 만난 것을 ‘삶이 허락한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편 이성희 씨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했다며 장용숙 씨와의 만남이 힐링,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이성희 씨의 형님들이 각각의 점포로 사업을 했고, 이성희 씨도 자신의 옷 가게를 운영할 만큼 여유로운 생활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가족의 교통사고로 이성희 씨의 집안은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처럼 용숙 씨와 성희 씨 두 사람은 아픈 상처를 감싸며 서로 이해하고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애정표현에 서툴러 보이는 이성희 씨는 아내가 힘들어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 도와줄 만큼 가정적이고 사랑 가득한 남편이라고 합니다. 아내 장용숙 씨 또한 남편의 든든한 후원자로, 언제나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멋진 아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상황은 사랑도 쉽게 변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예쁜 가정을 꾸려 나갔습니다. 장용숙 씨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친정 아버지도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질 법한데도 오히려 20대부터 매주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안부를 묻고 용돈을 부쳐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아내의 모습을 지켜봐 온 남편 이성희 씨는 편찮으신 장용숙 씨의 친정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치료받게 할 것을 아내에게 먼저 제안하였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준 장용숙 씨. 그리고 그런 그녀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편 이성희 씨. 진정한 천생연분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장용숙 씨 부부는 아직은 어린 두 아이와 편찮으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현실적인 생계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습니다. 남편 이성희 씨의 판넬 시공 일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수입 차이가 심해 그것만으로는 가계를 꾸려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혼자 마음고생 하는 남편을 돕기 위해 장용숙 씨는 인근 시장에서 아동복 판매 일을 시작했습니다. 추석 때부터 시작한 의류 판매에 단골손님도 제법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고객들을 상대하려면 더 많은 의류가 필요했습니다. 장용숙 씨 혼자 진땀을 빼며 시장에서 집, 집에서 시장까지 의류를 실어 날라보았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처럼 또 다른 좋은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려고 했던 그녀에게 기프트카라는 인연이 닿게 된 것이었습니다. 남편 이성희 씨도 기프트카와의 만남은 현재 상황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한 발 앞으로 나갈 줄 아는 아내의 긍정적이고 추진력 있는 성격 덕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했던 장용숙 씨는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 학력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 직접 공부를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틈틈이 검정고시를 준비했었다고 합니다.
장용숙 씨는 벌써 들뜬 마음에 기프트카 내부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해야 구매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지 연구 중이랍니다. 그 누구보다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장용숙 씨의 앞날이 더 큰 행복으로 가득해지길 기프트카가 함께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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