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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이정민 씨]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북한식 송편으로 빚어내다.

2013-11-01 뷰카운트5652 공유카운트2




작고 동그란 얼굴에 큰 눈, 웃을 때마다 활짝 피어나는 눈 주름은 이정민 씨만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잘 웃는 정민 씨이지만, 예전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아픈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이정민 씨,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08년 10월 이정민 씨는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떠나왔습니다. 이정민 씨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사는 하루하루가 앞날의 생사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의 연속이었고 떠나지 않는 것 외의 다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탈북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정민 씨는 어둔 밤 외롭게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그저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다른 북한이탈주민들보다는 오래 헤매지 않고 2009년 무사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이정민 씨의 고향은 중국국경에 인접해 있어 운이 좋으면 중국 전파 신호를 통해 한국 채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끔이나마 접했던 한국 드라마를 보며 어느 정도는 한국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민 씨. 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린 한국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 새롭게 적응해야만 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낯선 한국 땅에서의 새 삶은 2009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며 안정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원 동기의 소개로 만난 조선족 남편 최창갑 씨는 무뚝뚝한 첫 인상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듬직한 남자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남편 최창갑 씨 또한, 이정민 씨를 처음 보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이정민 씨는 너무 마르고 왜소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고 합니다.



일단 밥을 먼저 먹여야겠다고 생각한 최창갑 씨는 곧장 집으로 데려가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두 사람은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가 부부의 연을 맺을 거라는 것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 후 태어나서 한 번도 고향인 중국을 떠난 적 없던 최창갑 씨는 이정민 씨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고향을 두고 떠나온 두 사람에게 한국은 두렵고 낯선 땅이었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정민 씨 부부의 한국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한국땅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 아르바이트뿐이라 이 식당, 저 식당 옮겨가며 생활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이정민 씨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배가 붓고 피로감이 몰려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간 수치가 높아졌다며 C형 간염 진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건강을 먼저 회복하기로 했습니다. 독한 주사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고 비싼 주사 비용은 안 그래도 무거웠던 삶에 그만큼의 추를 더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정민 씨의 곁에는 평생 병원 한 번 가본 적 없는 튼튼하고 건강한 남편이 있었습니다. 몸이 힘들어지면서 이정민 씨는 남편을 많이 의지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마음의 고리는 더욱 단단해 졌습니다. 하지만 이정민 씨의 가슴 한구석에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슬픔의 상처와 공허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에 남겨진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아들에게 떠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섰던 정민 씨는 그 후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데려오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된 아들이 이동 중 발각되어 다시 북송 되는 큰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민 씨는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올해 8월 어렵게 한국 땅을 밟은 이정민 씨의 아들은 현재 하나원에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정민 씨 역시 곧 함께 살게 될 아들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한국인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부천의 한 시장에 떡 가게를 차린 이정민 씨 부부는 제법 단골손님이 많은 맛있는 떡집으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직접 공수해온 국내산 쌀로 모든 떡을 만들기 때문에 먹어보는 사람마다 쫄깃하고 맛있다는 칭찬을 늘어놓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몸이 약한 정민 씨는 새벽 일찍 일어나 집과 먼 거리에 있는 가게에 도착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또 대량주문이 들어올 때면 운송수단이 없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때마침 알게 된 기프트카는 부부에게 또 다른 판로를 열어주었습니다.



이정민 씨의 최종 목표는 북한식 송편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입니다. 이정민 씨는 김치와 당면 등을 넣어 만든 북한식 송편이 한 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 될 것이라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사이 오랜 기간 요리사로 일했던 최창갑 씨는 새로이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남들과는 다른 메뉴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졌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잘 이겨내고, 이제 새로운 가족과 함께 따뜻한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이정민 씨. 따뜻한 떡 시루에서 새어 나오는 김처럼 이정민 씨 가족의 앞날에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응원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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