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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김태경 씨] 등촌동 트럭 빵 아저씨, 희망 메뉴 추가요~

2013-10-01 뷰카운트4709 공유카운트3





김태경 씨는 청각장애 2급으로 세상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6~7살 무렵, 원인도 모른 채 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비록, 운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친구 삼아 인생길을 걸어왔답니다. 파란만장했던 과거는 잘 숙성된 반죽이 돼 꿈을 완성하는 재료가 된다고 말하는 김태경 씨. 자신만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김태경 씨의 외침을 함께 들어볼까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갑자기 소리를 잃어버린 김태경 씨.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병원에 찾아가봤지만, 의사는 원인을 모르겠다며 태경 씨를 돌려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장애를 떠안고 살아가게 된 것이지요.




김태경 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청각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는 그를 초등학교까지만 다니게 했습니다. 그 뒤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만두 가게에서 일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다른 형제들처럼 공부도 하고 싶고, 학교에도 가고 싶었던 김태경 씨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이 항상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한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방황하는 날이 더 많았던 태경 씨는 어머님의 권유로 한 수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 함께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된 태경 씨는 문득 아버지가 그리워졌다고 합니다. 오른손이 없는 아버지가 들리지 않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혼자 사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토록 엄하고 가혹하게 하셨던 것은 아닐까, 태경 씨는 눈물이 났습니다. 수도원에서 1년, 마음공부를 하고 스스로 수도원을 나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직장은 슬리퍼를 만드는 공장이었습니다.



만두 가게에서 요리를 하던 손으로 슬리퍼 공장의 기계를 만지게 된 그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기계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뿐더러,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한 스킬도 그때는 많이 부족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일을 해나갔던 김태경 씨는 사고로 오른쪽 손가락 하나를 잃게 됩니다. 손가락을 잃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과는 또 다른 아픔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대 청춘의 나이에 도전해보기도 전에 주저앉는 것은 싫었던 태경 씨. 다시 한 번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합니다.



아픈 손가락을 동여매고 김태경 씨가 선택한 것은 구두닦이였습니다. 당시 구두닦이는 잘만하면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직종이었기에 이 길을 선택하면 돈을 모아 공부도 할 수 있고, 좋은 직업도 가질 수 있을 걸로 생각했었답니다. 태경 씨는 아는 형의 소개로 장사가 잘된다는 명당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어느 큰 교회 앞, 정말 들은 것만큼 아니 들었던 것보다 훨씬 수입이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 태경 씨는 손님이 없어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구두닦이 부스를 닫고 새 일을 찾던 태경 씨는 1990년,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새초롬하게 머리를 쓸어 올리는 아내의 모습에 첫눈에 반하게 되었고, 가난했지만 자신을 따라와 주겠다 약속해 준 아내와 연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의 인생에서 결혼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김태경 씨의 아내 김미숙 씨 역시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습니다. 보청기에 의지해 세상과 소통을 하고는 있지만, 청각장애 2급의 중증상태입니다. 둘 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기에 주변에서는 걱정의 목소리와 함께 불편한 시선을 보냈고 그런 것들은 부부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결혼 후 둘은 힘을 합쳐 호떡 장사를 시작했고, 1991년 큰 아이를 출산, 1년 뒤 딸 하나를 더 낳아 김태경 씨 부부는 두 딸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김태경 씨는 기쁜 마음도 컸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호떡 장사로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며 아이들 분윳값과 기저귓값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호떡 장사도 주변상인들의 방해로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문득 김태경 씨는 아내가 늘 그리워하던 고향, 삼척에서 장사자리를 알아볼까 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삼척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고 직후 아내는 일주일간 의식이 없었고 첫째 딸은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둘째 딸은 유리가 얼굴에 박혀 3번의 수술을 받아야만 했고요. 지금도 딸들은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땐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했어요.”


김태경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고 합니다.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 세월이 2년이었습니다.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오기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그였습니다. ‘저 집은 왜 만날 저래?’, ‘희망이 없어’ 같은 얘기도 더는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깨어나고 아이들을 치료하기까지 호떡 장사로 10년의 세월을 보낸 김태경 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자리에서 호떡을 구워 팔던 김태경 씨가 스스로 변신을 꿈꾸게 됩니다.





김태경 씨는 현재 판매하고 있는 호떡에 새로운 메뉴를 더해 볼 생각이라고 합니다. 매일같이 반죽을 하고 다양한 고물로 맛을 내며 신메뉴 개발을 위해 노력 중인데요. 잘 숙성된 반죽에서 좋은 맛이 나듯 성실하게 연구해 나간다면 꿈을 향한 재료도 곧 완성될 거라며 확신에 찬 모습이었습니다.



김태경 씨는 자신과 가족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는데요. 여러분이 해주시는 응원에 대한 보답은 맛과 영양이 듬뿍 담긴 호떡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기프트카의 주인공이 된 김태경 씨의 인생이 달콤해지시기를 기프트카가 기원합니다.


후기보기 ☞ http://www.gift-car.kr/330



※ 김태경 씨의 인터뷰는 수화통역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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