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말도 마세요.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눈이 매워요. 가슴이 너무 아파서….”
금천구 시흥동에서 만난 강유진 씨. 단정한 옷 매무새,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40대 여성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특별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유진 씨를 만나볼까요?
유진 씨의 고향은 멉니다. 아직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2001년,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탈북을 결심해 2008년 한국의 땅을 밟은 ‘북한이탈주민’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자강도 출신의 그녀는 북한에서의 삶을 ‘암흑과 같았다’고 회상합니다.
결혼 6개월 만에 겪었던 남편과의 사별, 배곯는 현실 속에서 유진 씨의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한국을 알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 무렵 아버지에게 소개받은 여성을 따라 북한을 탈출합니다. 할머니가 건네주신 꼬깃꼬깃한 일본 돈 2만 엔을 옷 깊숙이 품고, 어린 딸을 남겨둔 채 탈북을 시도한 것입니다. 당시 그녀는 북한을 나오면 곧바로 한국에 갈 수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2001년 중국에 도착한 유진 씨는 ‘사기’와 ‘갈취’를 당하며 힘든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식당 일을 하다 만난 조선족 박 씨로부터 청도행을 제안 받은 것입니다. 중국 청도는 한국 회사들이 많습니다. 조금 더 빨리 대한민국의 땅을 밟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유진 씨가 하루빨리 한국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픈 이유는 딸과 함께할 행복한 내일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보금자리를 청도로 옮긴 유진 씨는 식당 일과 일용직을 전전하다 당당한 직업을 찾기로 합니다. 그러던 2006년, 운 좋게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인형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라는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 했습니다. 당시 일부 탈북자들이 중국 내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위기를 헤치며 유진 씨는 강해져 있었습니다. 어떤 환경이 주어져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겁니다. 여기에 야무진 솜씨까지 갖춰 사장님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도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녀였습니다. 자수와 바느질, 뜨개질은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으니까요.
2008년 유진 씨는 짐을 챙깁니다. 사장님께 출장을 간다고 말씀 드렸지만 사실 라오스 대사관으로 향한 겁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 위한, 희망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지요.
인천공항에서 만난 한국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화려했습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강유진 씨는 중국 청도 인형공장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인형공장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탈북자였다는 고백도 전했습니다. 사장님은 ‘그랬구나!’하시며 한국 생활에서 어려운 일이 있거든 언제든 돕겠다며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셨다고 합니다.
중국 인형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만났던 여러 사람들은 유진 씨의 든든한 사업 밑천이 돼 주었습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황금 같은 인맥을 얻은 겁니다. 그분들의 도움을 얻어 유진 씨는 2009년 인형공장을 차립니다. 한국에서의 첫 번째 사업인 셈입니다. 직접 샘플을 만들어 거래처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운전면허도 땄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사업은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거래처와의 의사소통, 영업 문제 등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회사의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그 길로 업계의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신념으로 안산에 위치한 인형공장에 들어갑니다. 생산주임으로 일하며 인형에 대해 다시 배우고 한국 생활도 자리를 잡습니다.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유진 씨는 두 번째 인형공장인 KB랜드를 차렸습니다. ‘KOREA BABY’의 약자인 회사 이름에는 대한민국 아이들이 안심하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인형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담았습니다. 여수엑스포의 공식 캐릭터 ‘여니’와 ‘수니’를 만들어 납품하는 계약도 맺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옵니다. 만들어 놨던 ‘여니’와 ‘수니’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창고에 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수엑스포 캐릭터 인형 납품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인형이 많이 팔리지도 않았고 저희와 계약한 회사 가 제때 지불해야 할 물건값도 치르지 않았거든요. 결국, 이 일로 저는 5000만 원이라는 빚더미에 앉게 됐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나가 인형들을 직접 팔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회사도 폐업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가까운 곳에 늘 함께 있거든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지요. 유진 씨는 지금 두 개의 희망 앞에 서 있습니다. 첫 번째 희망은 캐릭터 전문 회사의 투자를 받아 새로운 봉제공장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고 또 다른 희망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기프트카’를 만난 것입니다.
기프트카 주인공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유진 씨는 서툰 손길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가며 더욱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웁니다. 희망의 기프트카에 정성스럽게 만든 인형을 가득 싣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이런 유진 씨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후기보기 ☞ http://www.gift-car.kr/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