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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

무기력과 절망의 늪에서 만난 ‘희망’이라는 이름의 선물

2012-01-02 뷰카운트2587 공유카운트0


무기력과 절망의 늪에서 만난 ‘희망’이라는 이름의 선물

20년 전 실력 있는 재단사였던 최세영 씨는 부푼 꿈을 안고 과테말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뤘고, 봉제 사업도 성공하여 인생 최고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다 얼마 뒤 사업이 부도가 났고,
둘째 민수는 뇌가 분리되지 않은 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더는 살아갈 방법이 없어 아이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최세영 씨.
올해 쉰여덟이 된 그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마땅히 없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지쳐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그의 소망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방에서 제대로 된 밥을 먹이는 것입니다.

최세영 씨의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여러분의 응원이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응원 댓글이 300개가 넘으면 최세영 씨 가족에게 기프트카 지원이 확정됩니다.



[최세영 씨에게는 지켜야 할 소중한 두 아이가 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산산조각이 난 짧은 행복
올해 쉰여덟 살의 최세영 씨에게는 어린 두 아이가 있습니다. 여덟 살 하나와 일곱 살 민수를 볼 때마다 최세영 씨의 가슴은 먹먹합니다.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는데도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보내지 못한 큰딸 하나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나이도 들고 건강도 좋지 않아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최세영 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월세만 내고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설상가상, 둘째 민수는 뇌가 분리되지 않은 채로 태어난 탓에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차가운 방에서 아이들은 항상 외투를 입고 지냅니다]

20년 전, 최세영 씨는 젊고 실력 있는 재단사였습니다. 열정과 패기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품고서 1992년에 과테말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봉제 사업도 확장해 나가고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려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민수가 아내 뱃속에 있을 무렵, 번창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하던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시장에 밀리며 거래처는 끊어지고, 자금도, 물류도 막혀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빚더미 위에 앉았고, 빚쟁이들은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횡포를 부렸습니다. 임신 중이던 아내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렸고, 그 영향인지 민수는 뇌가 다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과테말라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린 최세영 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느라 몸이 너무 허약해진 아내는 과테말라를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두 아이만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이고 싶다는 최세영 씨]

아이들의 소박한 꿈을 지켜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한창 엄마 품에 안겨 사랑과 관심을 받고 커야 할 나이에 외롭게 남겨진 두 아이를 볼 때마다 최세영 씨는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월셋방에 살면서 난방비 낼 형편이 안되어 추운 겨울에도 벌벌 떨기 일수입니다. 난방 장치라고는 자그마한 전기난로 하나뿐이어서, 아이들은 방에서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지내야 하죠. 따뜻하게 몸을 데우지 못해 겨우내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최세영 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그래도 얼마 전부터 아이들이 지역 아동센터에 다니게 되어 최세영 씨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최세영 씨는 일을 나갈 때마다 종일 아이들만 집에 있게 할 뿐 충분히 보살펴주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비록 난방조차 되지 않는 차가운 방이지만 두 아이들에게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은 최세영 씨]

찐 만두의 뜨거운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자활 의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최세영 씨의 삶은 암담했습니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마음은 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역 자활센터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붕어빵이나 어묵 노점상도 알아봤지만 마땅치 않았던 차에 우연히 트럭에서 만두를 파는 분을 만났습니다. 도매 집에서 만두를 가져와 차에 싣고 다니며 쪄서 팔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이도 가능하고, 나이가 많은 최세영 씨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최세영 씨는 어떻게 하면 장사를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그의 사정을 들은 만두 가게 사장님이 자신이 물건을 공수해오는 도매 집도 소개해주고, 손님 응대하는 법이나 노하우 등을 일러주었습니다.



[생활은 어렵지만 서로가 있어 행복한 최세영 씨와 아이들]

“효성동에 있는 만두 도매집도 직접 가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먹일 수 있을 만큼 시설도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이거라면 일어설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가 필요했습니다. 최세영 씨는 지금 형편으로는 가게를 차리는 것보다 차량을 이용해 노점상을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희망드림 기프트카 캠페인을 알게 된 최세영 씨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심정으로 지원 신청을 했습니다. 지원 신청을 하고 결과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틈나는 대로 만두집에 찾아가 장사하는 모습도 직접 보고, 노하우를 익히기도 하면서 장사가 잘될만한 장소를 물색해 보기도 하는 등 차근차근 자립 계획을 세우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천 소망지역 아동센터에서는 차량 지원 후 센터 앞 공간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만두 1박스를 떼어오고, 장사가 익숙해지면 2박스를 가져올 생각입니다.
보통 하루 이윤이 초보는 7~8만 원 정도이고, 잘하면 20만 원 정도도 벌 수 있다고 해요.
시간이 지나면 장사가 잘되는 장소를 고르는 눈도 생긴다고 하네요.
부도난 후 한국에 돌아와서 몇 년을 그저 막막해하며 보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볼 생각입니다.”



[최세영 씨는 행복한 내일을 꿈꾸며 자립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업 실패로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낸 최세영 씨.
아이들을 따뜻한 방에서 재우고 제대로 된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 그가 이루고 싶은 소망입니다.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다는 그는 자리를 잡으면 아내와 함께 살 방법도 찾아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헤어졌던 엄마 품에 다시 안길 수 있도록 최세영 씨의 기프트카 지원에 응원을 보내주세요!


여러분의 응원 댓글로 최세영 씨에게 자동차를 선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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