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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

오늘도 ‘믿음’을 향해 달리는 가장, 윤종수 씨

2011-11-01 뷰카운트3373 공유카운트0

오늘도 ‘믿음’을 향해 달리는 가장, 윤종수 씨


큰 회사의 대표 자리에서 당장 오늘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자리에 선 가장이 있습니다.
바로 2011년 11월 희망드림 기프트카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윤종수 씨입니다.
인생의 극과 극을 맛본 윤종수 씨는 재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고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들려 드리는 굴곡 많던 윤종수 씨의 인생 이야기를 여러분도 확인해 보세요.

여러분의 응원 댓글이 300개가 넘으면 윤종수 씨 가족에게 기프트카 지원이 확정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겪은 윤종수 씨와 그의 막내딸 혜림이(가명)]

천직 ‘장사꾼’ 윤종수 씨의 인생 이야기
윤종수 씨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장사를 하면서 장사하는 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에게 장사하는 것은 가장 쉽고 재미있는 놀이이자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윤종수 씨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금강제화에 취업하여 판매원으로 최고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결심한 후, 윤종수 씨는 넷째 누나의 권유로 부산으로 내려와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생선과 해물을 건조하거나 쪄서 가공한 후에 부산은 물론 대구와 구미의 백화점과 시장에 판매하는 일이었는데, 수완이 좋은 윤종수 씨 덕분에 당시 3일동안 작업한 물건도 반나절이면 동 나서 더는 팔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윤종수 씨의 장사 수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이후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냉동 수산물 제조공장을 세운 후 점차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공장이 한 곳에서 두 곳으로 늘어나며 사업은 순탄하게 성공 가도를 달려나갔지요.

[현재 냉동수산물제조 공장의 일부를 빌려 다시 일을 시작한 윤종수 씨]

성공만 보며 달려가던 그 앞에 닥친 예상치 못한 위기 그리고 좌절
당시 윤종수 씨가 운영하던 공장은 60명의 직원과 함께 연 매출이 수십억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성공도 잠시, 2003년 부산을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해 지하에 있던 가공 공장이 물에 잠겨 부도가 날 뻔한 위기를 겪게 되었지요. 다행히 다른 곳에 있던 또 다른 공장은 손해를 입지 않아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안정을 찾는 듯싶었던 윤종수 씨의 사업은 또 한 번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업 확장을 위해 구매한 땅의 어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땅 주인이 발행한 어음 3억 2천만 원을 막지 못해 그의 회사는 결국 부도 처리될 수 밖에 없었고, 그 후 윤종수 씨는 16억에 달하는 담보대출과 12억의 신용대출 채무라는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만들어 놓은 회사였습니다.
그런 회사가 없어지니 그저 머리가 멍했죠.
구속되고,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쳤고, 잠시 죽음이 떠오를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하며 키워왔던 회사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윤종수 씨의 공장과 집안 곳곳에는 압류딱지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 금액 때문에 차라리 감옥에 들어갈까도 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접은 그는 공장과 집을 경매로 팔아 밀린 직원 월급을 지급하고 빚 일부를 우선 갚았습니다. 그때의 채무 때문에 윤종수 씨의 형제들까지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되면서 형제들과의 관계도 다소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윤종수 씨는 자신을 믿어준 가족들이 있어 그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다시 재기를 꿈꿀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로 항상 남편을 믿는다는 아내 경민선 씨와 윤종수 씨]

윤종수 씨와 아이들의 멘토, 아내 경민선 씨
윤종수 씨는 현재 재기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내 경민선 씨의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처음 부도 소식을 접한 후 지인은 물론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던 남편이 이틀 만에 나타나 회사가 부도가 났다고 털어놓자 경민선 씨는 “힘내”라는 말 한마디로 윤종수 씨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그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큰 힘이자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부도가 났다고 들었을 때 남편 걱정을 가장 많이 했어요.
남편은 집안의 기둥인데, 기둥이 무너지면 가족이 무너지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러나 남편이 힘들까 걱정했지, 부정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순간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믿었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화목하게 사는 윤종수 씨 가족]

현재 윤종수 씨는 수산업을 하며 알게 된 지인이 소개한 일용직 일과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건문어’ 사업을 병행해 가며 월 150만 원 정도의 수입을 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채무를 갚는 돈으로 나가고 있어 가족의 생계는 아내 경민선 씨가 식당 일, 청소 일을 하며 버는 돈 50여만 원으로 근근이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아이들의 외삼촌이 빌려준 보증금 500만 원으로 구한 방 2칸짜리 집으로 월세가 20만 원입니다.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네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무척 빠듯하여 아이들의 학원은 엄두도 낼 수 없고, 반찬도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몸이 약한 편인 경민선 씨에게는 버거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녀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가족을 지탱하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회사가 부도난 후 윤종수 씨와 가족들이 두 달간 떠돌이 생활을 하다 잠시 기도원에 머물던 시절의 일입니다.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부모님을 따라 떠돌다 기도원으로 따라 들어온 어린 두 딸 첫째 수빈이(가명)와 막내 혜림이(가명)에게 경민선 씨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너희 지금 방학이잖아?
집에만 있으면 갑갑할 것 같아서 우리 지금 여행 온 거야”

경민선 씨의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통해 윤종수 씨와 아이들은 함께 어려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숨긴 그녀야말로 진정한 외유내강 엄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시 한 번 도약을 꿈꾸는 윤종수 씨]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의 재도약을 꿈꾸다!
지금 윤종수 씨는 삶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부도로 인해 신용 불량이 된 후, 본인 명의로 사업할 수 없어서 현재는 공장을 빌려 지인이 소개해 준 ‘건문어’를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건문어 가공업’ 은 아직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 생소한 상품이지만 이미 일본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그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막 시작한 단계라 아직은 주문이 많지 않아 평소에는 일용직 일과 병행하며 주문이 들어올 경우에만 건문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거래처와 지인들 외에는 납품을 하는 곳이 없지만 윤종수 씨의 성실함이라면 더욱 많은 거래처가 생겨 사업이 번창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요?

오늘도 성실히 일하며 월수입의 대부분을 채무 상환에 힘쓰고 있는 윤종수 씨는 아직도 약 8억 정도의 빚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은행 대출 외에도 사채까지 썼었기에 부도 초기에는 채권자들이 돈을 받기 위해 집으로 찾아오는 일이 잦았지만 약속한 날짜에 꾸준히 채무를 갚으며 절대 도망가지 않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약속을 한 후, 지금은 집까지 오는 경우가 없다고 하네요.

[지인의 소개로 ‘건문어’를 가공하는 일을 시작한 윤종수 씨]

“예전에는 바닥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중간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납품해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앞으로의 상황이 눈에 보입니다.
손에 잡힐 듯 선명한 미래를 이제 실현해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남편을 도와 건문어 납품 일을 돕고 있는 아내 경민선 씨와 남편 윤종수 씨]

윤종수 씨에게 기프트카란 ‘삶의 터전’
윤종수 씨는 새 차가 생긴다면, 자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건문어’ 사업을 위해서는 냉동탑차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물건을 보관할 냉동고가 없기에 지금은 물건을 발주 받으면 1톤 트럭을 빌려 배달하고,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물건을 날라야 하니 무척 불편한 실정이지요. 그렇기에 윤종수 씨에게 냉동탑차는 물건을 운송할 수 있는 ‘자동차’ 인 동시에 냉동공간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작업장’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 사업을 하던 당시에는 급한 배달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냉동탑차에 물건을 보관한 채로 근처에 주차해 두었다가 사용하였다고 하는데요, 아직 번듯한 공장이 없는 지금은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사업 확장을 위해 중요한 것이 바로 신규 거래처를 확보하는 것인데, 차가 생긴다면 국내는 물론 일본 수출을 위한 판로 개척까지 든든한 역할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비전으로 밝은 미래를 꿈꾸는 윤종수 씨 가족]

착실히 빚을 갚아 나가고 있는 윤종수 씨는 지금도 밝은 미래가 금방이라도 찾아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새 차는 그에게 가족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희망을 위한 ‘삶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아직 모르는 일이죠. 여러분이 만약 절 다시 만나게 됐을 때,
다시 큰 공장의 사장이 되어 있을지도요.”

여러분, 윤종수 씨가 차량을 지원받아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지금 절망에 빠진 사람들 역시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다시 한 번 재기하려는 윤종수 씨가 기프트카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댓글로 응원해 주세요!


여러분의 응원 댓글로 윤종수 씨에게 자동차를 선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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