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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6

【김동업 씨】 두 딸의 슈퍼맨, 동업 씨의 변신이 시작됩니다

2015-10-01 뷰카운트5839 공유카운트18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외로움을 이겨내고 진실한 사랑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 좌절을 이겨내고 사랑의 힘으로 우뚝 선 아름다운 사람들, 바로 김동업 씨 가족이 그러합니다. 가족의 사랑으로 깊은 절망의 순간을 빠져나온 동업 씨, 그가 이제 기프트카와 함께 재기의 길을 열어갑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반려자

1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난 동업 씨의 유년시절은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건실하게 직장생활을 한 아버지 덕분이었죠. 게다가 동업 씨는 외동아들로서 사랑을 독차지하며 남부럽지 않게 자랐습니다.

“부모님 기대와는 달리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하고, 제대해서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었어요.”

직접 몸으로 부딪혀 배우길 좋아했던 동업 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사회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엔 건설현장과 신발공장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어느 정도 사회경험을 쌓은 후에는 매형이 운영하는 수입축산물회사에서 일을 배우며 착실히 경력을 쌓았습니다. 창업만 바라보며 노력한 끝에 드디어 부산에 수입고기 유통 회사를 차렸습니다. 일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노력한 만큼 결실을 거두는 보람찬 시절이었습니다.

한창 사업이 무르익어갈 무렵, 동업 씨는 친한 동생과 함께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처럼 무뚝뚝했어요. 근데 그게 싫지 않은 거 있죠? 오히려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인연이 되려고 그랬을까요? 동업 씨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척척 해내는 야무진 담티빛박 씨의 모습에 눈길이 계속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두 사람은 평생의 반려자로서 한국에서 부부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담티빛박 씨는 단혜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갖게 되었죠. 마흔을 넘겨 만난 소중한 반려자, 사랑의 결실인 첫째 딸 소희가 태어나면서 가족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는 안정적인 사업과 가족을 생각하며 자신의 삶이 곧게 뻗은 아스팔트 길 위에 안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서히 드리운 불행의 그늘

동업 씨는 수입고기 유통업을 하며 한동안은 남부럽지 않게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불행의 그늘이 서서히 동업 씨의 가정에 드리우고 있었죠.

“결혼 전에는 돈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쓰고 그랬어요. 한 마디로 철부지였죠. 결혼하고 나서야 재정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아끼며 살았어요. 하지만 준비해 둔 여유 자금 없이 사업을 끌고 가다 보니 점차 빚을 지게 되더군요.”

빚은 점차 불어나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갔습니다. 결국, 채권자에게 회사를 빼앗기고, 마지막 남은 집마저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제야 아내 혜선 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막막함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둘째를 임신하고 있어서 더 그랬어요. 정말 그때는 생활비 걱정에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았어요.”

동업 씨는 자신만을 믿고 따라와 준 아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사업 재정관리를 더 탄탄히 해야 했다는 때늦은 후회로 고개를 떨구어봐도 불행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다

한동안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던 동업 씨를 일으킨 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멋지게 재기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자신들을 따라서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 하는 것이 어떠냐는 큰 누나와 막내 여동생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된 동업 씨 가족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강화군으로 이사를 결행했습니다. 그런데 아내 혜선 씨는 유난히 그해 4월이 춥게 느껴졌답니다.

“한국말이 서툴다 보니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었어요. 이제 좀 말도 통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생겼구나 싶었을 때, 이사를 해야 했죠. 4월에 이사를 했는데도 내복을 입고 다녔어요. 마음이 춥고 외로워서 더 그랬나 봐요. 물론 부산이 따뜻한 곳이기도 했고요.”

차가운 현실 앞에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지만, 온전히 서로에게 기대어 설 수밖에 없었던 가족. 동업 씨는 다시 이를 악물고 현실에 맞서기로 했습니다. 강화지역자활센터 공동작업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적은 월급과 정부 지원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혜선 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 딸의 양육에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베트남 새댁 단혜선 씨도 살뜰하게 가정을 보살폈습니다. 동업 씨는 그런 아내와 두 딸을 보며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동업 씨 가족의 일상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네 가족의 한 달 나기가 빠듯한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타오르는 창업 의지

강화지역자활센터 공동작업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동업 씨. 우연한 기회에 센터에서 주관하는 창업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 동업 씨는 다시 가정을 일으킬 수 있는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유통회사의 부품 및 중간 재료를 가져와 단순조립과 포장 후 납품하는 사업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통과 영업에서만큼은 수십 년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자신 있었습니다. 공동작업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사업계획도 세웠죠. 근데 문제는 기동성에 있더군요.”

거래 공장들이 강화뿐만 아니라 김포나 파주 일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먼 거리의 공장들을 오가며 영업과 납품을 하려면 차량이 꼭 필요했죠. 하지만 동업 씨는 차를 구매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탄탄한 창업 계획이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때 창업 계획을 지원하고 응원해주던 센터 직원이 기프트카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프트카를 지원받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죠. 동업 씨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고, 신청과 동시에 창업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습니다.

가족의 꿈을 싣고 달리는 기프트카

어느덧 한국 생활 9년 차인 베트남 새댁 혜선 씨. 힘든 시간을 견디며 가족은 더욱 단단해짐을 느낍니다.

“지금 가장 절실한 목표는 생활 안정이죠. 앞으로는 제가 경제권을 꽉 쥐고 새는 곳 없게 관리할 생각이에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 거예요. 그래야 베푸는 삶도 가능해질 테니까요.”

위기의 순간을 겪었지만 재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동업 씨. 지금 동업 씨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바로 두 딸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입니다.

“소희는 춤추는 걸 좋아해서 자꾸 댄스학원에 보내달라고 해요.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죠. 은희도 언니 따라 승무원이 꿈이래요. 건강하게 오래도록 일해서 애들이 하고 싶다는 건 뭐든 다 해주고 싶어요. 열심히 해야죠. 멈추지 않을 겁니다.”

두 딸에게는 슈퍼맨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아빠의 마음 아닐까요? 기프트카는 가족의 꿈을 싣고 달리는 슈퍼맨 동업 씨의 화려한 변신에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재기의 길 위를 누비는 동업 씨를 모두 함께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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