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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5

【황병미 씨】 엄마의 사랑으로, 가족의 힘으로!

2014-11-27 뷰카운트7264 공유카운트22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주저 없이 행했던 어머니들의 모습은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여기, 조금 더 특별한 사연을 지닌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딸의 밝은 웃음과 존재만으로 삶의 이유는 충분하다는 황병미 씨. 사랑스러운 두 딸과 희망찬 내일을 그리고 있는 병미 씨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삶의 전환점을 맞다

장교로 근무하셨던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와 우애 좋은 다섯 형제들. 다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황병미 씨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시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결혼이라는 인생의 달콤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동대문에서 원단을 취급하던 남편의 사업은 점점 기울어만 가자 집안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부부에게 찾아온 첫 번째 선물, 큰딸 현승이의 건강에 적신호가 울리자 부부의 관계는 차츰 멀어졌습니다. “결혼 초에 무리하게 일을 많이 한 탓에 7개월 만에 아이를 조산했어요. 1.5k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난 아이는 장 협착과 유착으로 6개월을 병원에서 견뎠죠.”
병미 씨는 이혼을 결심하고 몇 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이후 양육권을 얻게 된 병미 씨는 이전과는 180도 다른 새로운 인생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전부 현승

어쩌면 다행이라고 병미 씨는 말합니다. 큰딸 현승이의 청각장애 2급 판정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그래도 자신의 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입원해 있을 때 병원에서는 최악의 건강 상태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20살의 소녀가 되어 엄마 곁에서 방긋 웃음 짓는 현승이. 태어나자마자 장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 먹어야 했던 항생제는 현승이의 청신경을 모두 녹여버렸습니다. 신경 세포 자체가 없는 양쪽 귀는 지금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이가 11개월 지났을 때 청세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상을 못했으면 놀랐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걸을 수 있고 활동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전 바로 복지관으로 달려가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병미 씨는 이때부터 현승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하며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서울 토박이였던 그녀가 경기도로, 그리고 다시 청주로 내려오게 된 것도 현승이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에는 학교 선택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수소문 끝에 충주의 한 학교가 안전하다고 판단해 망설임 없이 혈혈단신 청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현승이의 학교에 따라 계속 이사를 다녔던 병미 씨 가족. 이사뿐만이 아닙니다. 병미 씨는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직업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요.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며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직업군에 눈을 돌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 이사를 다닌 탓에 경력은 다시 원점으로 가기 일쑤였고, 오르지 않는 적은 급여로 세 식구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혹독했습니다. 청주에 내려온 후부터는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다른 아르바이트를 더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현승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참고 기다리자며 병미 씨는 마음을 고쳐봅니다.


아픔은 또 다른 아픔으로 번지고

“그저 의젓한 줄 알았어요. 씩씩하고 언니를 다 이해하는 줄 알았죠. 고민이 그리 많은 아이란 걸 미처 몰랐습니다.”
병미 씨에게는 아픈 손가락이 하나 더 있습니다. 현승이의 동생, 둘째 딸 현지입니다. 장애가 있는 언니에게만 늘 매달리는 엄마를 보며 현지의 마음의 병은 깊어져 갔습니다.
가정 형편 상 엄마와 떨어져 경기도에 계신 외할머니 품에서 줄곧 지내왔던 것도 마음의 병을 키우는 원인이었습니다.
“’엄마는 언니밖에 몰라’라는 말을 둘째 아이에게 들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형편이 어려워도 세 식구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던 걸까 후회도 되고요. 이제부터라도 현지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요.”
병미 씨는 이야기를 전하며 이내 고개를 떨굽니다. 오히려 첫째 현승이보다 현지가 병원 입원을 권유 받을 정도로 상태가 심해지자 가족은 또 한 번의 큰 결정을 하게 됩니다. 현지를 힘들게 하던 학교생활을 접고 청주로 내려와 세 식구가 오손도손 미래를 그려가는 게 그것이죠. 그 후 현지는 작년 11월 청주에 내려와 십여 년 만에 엄마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지난 8월에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또 최근 토스트 가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현지의 얼굴에는 웃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비좁은 원룸 단칸방이지만 이제야 병미 씨는 아이들과 살을 부비며 온전한 가정을 이룬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우리를 하나로 단단히 엮어줄 선물, 기프트카

병미 씨는 현재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일을 돕는 사회복지 업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직이고 급여가 적어 생활을 간신히 이어가는 정도입니다. 현승이의 졸업과 맞물려 나이가 들어도 지속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기프트카를 알게 되었습니다. 병미 씨의 말 대로라면 정말 한 푼도 남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에 기적처럼 기프트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지인이 기프트카 사업을 이야기해주길래 유심히 들었죠.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3월부터 모집 공고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답니다. 가난을 대물림 하긴 싫어요. 좀 더 소득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은데 당장 자금이 없으니 쉽지 않죠. 기프트카를 통해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예요. 두 딸과 똘똘 뭉쳐 일할 수 있으니 또 이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요?”
병미 씨가 구상한 기프트카 창업 업종은 바로 따끈따끈 토스트와 우동! 비교적 노하우를 적게 요하는 업종이고 둘째 현지가 토스트 아르바이트를 통해 착실히 실력을 쌓고 있어 결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딸이 나란히 토스트를 만들고 병미 씨는 우동 소스를 개발해 손님들에게 맛깔 나는 우동을 대접할 계획입니다. 현승이와 현지도 덩달아 신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엄마에게 창업 아이디어를 소곤소곤 전해줍니다. 학생들의 아침 등교 시간에 맞춘 컵밥과 유원지에서 컵라면을 선보이자는 것도 모두 현지의 아이디어입니다. 현승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벌써부터 장사할 생각에 부풀어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아파트에 가자고 하는 현승이를 보며 병미 씨는 오늘도 희망을 그려봅니다.


찬란하게 펼쳐질 앞으로를 그리며

지난날을 돌아보면 병미 씨의 삶은 딸들 그 자체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너무 자식에게 매여 살지 말라며 만류도 했지만 병미 씨는 의심의 여지없이 현승, 현지와 20년을 달려왔습니다. 만약 예전으로 돌아가 선택의 순간이 온다 해도 병미 씨는 오늘의 모습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현승이는 4~5살의 귀여운 모습이 20살이 된 지금까지 남아있죠. 여전히 아기같이 귀여운 모습은 항상 제게 기쁨을 줘요. 아이들은 제 인생 그대로예요. 기프트카를 받게 된다면 두 아이와 항상 붙어 다니며 삶의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요. 노력하면 꼭 이루어진다고요. 그리고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고요.”
인터뷰 말미에 수줍게 현지가 엄마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전합니다.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어 우리 가족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현지의 응원에 병미 씨의 어깨는 한 뼘 더 하늘로 올라갑니다.

기프트카와 함께 할 병미 씨 가족의 새로운 시작, 여러분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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