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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박용민 씨]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듯 인생을 재정비하다.

2014-03-03 뷰카운트4707 공유카운트8





충남 공주,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박용민 씨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궁핍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박용민 씨는 어머니께서 일하러 나가시면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혼자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깊은 밤까지 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릴 때면 외로움에 혼자 몸을 떨었습니다. 박용민 씨의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어린 아들과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던히도 고달픈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박용민 씨 어머니는 새로운 연분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단둘뿐이었던 박용민 씨의 조촐한 가정에 농사꾼인 새 아버지와 네 명의 형제들이 생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가정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던 박용민 씨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새 아버지와 따뜻한 배려로 의지할 수 있게 해준 형, 누나들 덕분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새 아버지의 농사일이 잘되지 않아 물질적인 부족함을 채울 수는 없었지만, 외로움에 떨었던 박용민 씨는 따뜻한 밥 한 끼,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행복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어느새 중학교를 졸업한 박용민 씨는 고등학교 입학을 코앞에 앞두고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나름의 특기도 있었고, 꿈도 있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박용민 씨는 자신의 꿈보다 더 큰 세상을 향한 도전을 위해 고향인 충남 공주를 떠나 홀로 전에 있는 직업훈련소에서 기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자 부품 조립 과에 들어간 열일곱 살의 박용민 씨는 그곳에서 다양한 수리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자신이 의외로 손재주가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1년의 직업훈련소 생활이 끝나갈 때쯤 자신감이 붙은 박용민 씨는 전자기기, 음향기기 등의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취업을 준비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중졸 학력으로는 기술이 있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용민 씨는 직업훈련소에서 함께 생활하던 지인들의 집에 얹혀살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무사히 졸업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엔 직업훈련소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대기업 서비스센터에 취직하게 되었고,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수습사원으로 일하며 기본을 다져갔습니다.



스물네 살, 군에서 제대한 박용민 씨는 다시 전에 일하던 직장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배우면 끝까지 하는 성격이었던 박용민 씨는 수습사원일 때부터 성실성이나 기술 면에서 인정을 받아왔던 것이었습니다. 박용민 씨 또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제품들을 직접 보고 만지며 실습해 볼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박용민 씨는 밥솥, 청소기, 드라이기 같이 수리가 쉬운 제품부터 TV, 냉장고, 세탁기, 오디오처럼 전문기술이 필요한 전자제품까지 못 고치는 것이 없는 만능 수리공이 되어갔습니다. 특히 다른 기술자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신기술이 적용된 기기들이 출시되면 제일 먼저 배우고 연습했습니다. 실제로 신제품이 고장 나 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가 거의 없었을 때조차 박용민 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수리하러 다닐 정도였습니다.




박용민 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0년간 모은 돈을 투자해 전자제품 서비스센터를 열기로 했습니다. 춘천에 가전제품 서비스센터가 부족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박용민 씨는 춘천 전 지역을 접수하겠다는 목표로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업경험이 없었던 탓인지 박용민 씨의 사업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객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홍보도 해보고 무료 A/S 이벤트도 해보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도 사무실 전화기의 벨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느낀 박용민 씨는 1년 2개월 만에 사업을 정리하고 말았습니다. 10년간의 노하우와 자금을 전부 쏟아 부었던 첫 사업이 끝났을 때, 박용민 씨에게 남은 건 300만 원의 현금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박용민 씨는 천안의 한 전자제품 서비스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천안은 고향인 공주와 가까운 곳이기도 해서 혹시라도 나이 드신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찾아갈 수 있도록 선택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아내 강현경 씨였습니다.



박용민 씨는 평소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에 호감이 가는 직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숫기가 없어 말 한번 붙이지 못했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미용실 원장님의 주선으로 두 사람은 수줍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용민 씨는 일이 늦은 시간에야 끝났던 강민경 씨를 매일 집까지 바래다주었고, 강민경 씨는 출장을 자주 나가는 박용민 씨를 위해 도시락을 싸주며 알콩달콩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서로를 향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은 2001년, 드디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분윳값과 기저귓값을 벌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출장을 다니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박용민 씨는 작은 점포를 얻어 다시 한 번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춘천에서의 첫 사업실패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수리하는 일은 여전히 박용민 씨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고 이번엔 왠지 모를 자신감도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이번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갔고 금방 자리도 잡혔습니다. 그때 둘째 종평이가 태어났고 박용민 씨는 더욱 바쁜 하루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박용민 씨의 새 아버지께서 췌장암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엔 홀로 공주에서 식당 일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던 박용민 씨의 어머니마저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박용민 씨는 어머니마저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큰 병원으로 모셔 치료를 받게 해드렸고, 치료 후 팔다리의 마비증상으로 재활치료를 해야 했던 어머니를 박용민 씨 부부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막내아들을 임신 중이었던 아내 강민경 씨는 만삭의 몸으로 어머니를 씻기고, 병실 청소와 빨래를 했습니다. 박용민 씨 또한 직장과 가정, 병원을 오가며 바쁜 생활을 해갔습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른 후 박용민 씨의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주 본가가 편하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치료 후 공주에서 복지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하지만 2년간의 긴 재활치료는 박용민 씨 부부의 몸과 마음을 많이 지치게 했습니다. 특히 재활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자리를 잡아가던 사업장을 정리하고 전세보증금을 빼서 사용했던 것이 큰 타격이었습니다. 서비스센터에 다시 취직해 들어오는 일은 모조리 받았지만, 다섯 식구의 생활비로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고 계속해서 커가는 세 아들의 양육비용은 더 큰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벌써 중학생이 된 종빈이와 초등학생 종평이, 네 살 종현이에게 아버지로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해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갑상선 기능 이상으로 제대로 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정체해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인에게 낡은 트럭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던 박용민 씨는 지금까지의 경력을 살려 ‘출장 수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박용민 씨가 구매한 2000년식 트럭은 정말 고장이 잦았습니다. 게다가 한번 고장 나면 수리비가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이 넘게 들었습니다. 2013년 한 해에만 400만 원이 넘는 수리비를 지출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차량의 잠금장치가 고장 나 수리도구와 전기선 등의 도난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차체에 구멍까지 나 운전할 때마다 발밑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래도 박용민 씨는 일곱 군데나 되는 알뜰매장에 나가 홍보를 하고 일거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복지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기프트카를 신청하게 되었다는 박용민 씨는 주인공으로 선정되기 전까지 떨려서 잠도 잘 못 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프트카를 받으면 어떤 거래처를 개척할지 즐거운 상상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수리가 어려운 옛날 가전제품을 수리해오며 100명 정도의 단골을 확보해 놓았다는 박용민 씨는 오랜 경력으로 어떠한 제품이라도 고칠 수 있는 만능 수리공이 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하는데요. 앞으로도 어려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제품도 척척 수리해내는 만능 수리공이 되고 싶다는 박용민 씨를 여러분도 함께 응원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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