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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이기림 씨] 가족의 힘으로 인생의 장애물을 뛰어넘다.

2014-03-03 뷰카운트1070 공유카운트0





이기림 씨는 경남 마산에서 4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마흔셋에 일찍 제대한 후 여덟 명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셨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엄격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 익숙해 있던 아버지는 사회의 유연한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셨고, 열 몇 차례씩 회사를 옮겨 다니셔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가정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고, 이기림 씨는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이후 병원 사무직 일 등 몇 년간 더 직장 생활을 하며 자신은 한곳에 정착해서 업무를 하는 사무직보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될거라 판단한 이기림 씨는 창호 일을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7년 정도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창호 시공 경력을 쌓은 이기림 씨는 오랜 객지 생활에 지쳐, 결국 서른셋이 되던 해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간 열심히 일한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었고, 고향 사람들에게 금의환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었던 이기림 씨는 그간 모은 돈으로 중고차 한 대를 샀습니다.
그런데 얄궂은 운명은 젊은 이기림 씨의 희망을 산산이 조각 내 버렸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기쁜 마음으로 고향을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가벼운 접촉 사고였지만 책임보험만 가입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적잖은 견적이 나와 힘들게 모은 돈을 허무하게 잃고 나니, 의욕마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후 이기림 씨는 1년여간 매형이 있는 구미로 내려가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기림 씨가 다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곳은 대전이었습니다. 매형의 소개로 창호 시공 일을 시작한 이기림 씨는 좌절을 딛고 예전과 같이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그렇게 잃었던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해갈 무렵,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만남도 역시 매형을 통해서였습니다. 처음 아내를 소개받았을 때 이기림 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한 감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 서른넷, 충분히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이기림 씨는 모아둔 재산도 없고 안정적인 일을 하는 형편도 아니었던 터라 누군가를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내 서영선 씨를 보자마자 참하면서 야무진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 과감히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만남에서 결혼까지 단 18일.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부간의 신뢰와 애정이 반드시 만난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정수입이 없던 탓에 작은 월세방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은 아내의 쌈짓돈으로 두세 달 생활해야 할 만큼 어려웠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만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이 남편을 믿고 응원해 준 아내 서영선 씨 덕분에 이기림 씨는 창호 시공 회사에 취직했고, 많지 않지만 안정적인 월급도 아내의 손에 쥐여줄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덕분이었을까요? 이기림 씨는 창호시공 일에 자신감과 노하우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셋으로 늘어나자 그는 더 나은 수입을 위해 개인 사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준비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개인 사업이라지만, 꼼꼼한 성격만큼 많은 준비를 한 덕에 이기림 씨의 회사는 한동안 승승장구했습니다. 창호 시공은 물론 현관 유리문과 난간을 설치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전국의 교회 건물 및 충청 지역의 상가나 빌라 공사를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데다, 꼼꼼하게 일을 잘한다고 소문난 덕분에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수입도 늘어갔습니다.
서른넷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 이기림 씨는 자신의 일이 있고 그 일로 아내와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업이 잘된 덕분에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정점에 오른 이기림 씨의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한 번의 내리막이었습니다.



불황은 잠시 열어둔 창문으로 스며든 찬바람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닥쳐왔습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일거리로 달력에 표시해둘 자리조차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일거리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한 건의 공사가 끝나고 다음 일거리가 없어 수입이 끊기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건설 경기는 더욱 급격히 나빠져서 규모가 큰 공사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고 간간이 들어오는 일도 이윤이 적은 일들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넷째 강민이가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축복을 제대로 누릴 여유조차 없이 수입은 계속 줄어만 갔고, 이기림 씨의 회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6년 만에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화물차와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 했던 일도, 창호 시공 전문가 겸 대표에서 하루아침에 일용직 근로자가 된 것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자괴감은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특히 성악을 전공하는 첫째 딸 예원이의 꿈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학비가 필요했는데,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어 '그만두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기림 씨는 예원이의 선생님께 자신의 ‘개인 비용을 들여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로서 아이의 꿈과 재능을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꺾지는 말자 생각하며 다시 이를 악물었습니다.



둘째 강주와 셋째 강윤이는 연년생 형제입니다. 축구를 비롯한 운동을 좋아하는 강주는 내성적이지만 매우 어른스럽고 의젓한 편이고, 호기심도 많고 활발한 셋째 강윤이는 아빠를 닮아 손재주가 좋습니다. 이제 다섯 살인 막내 강민이는 가족의 웃음을 책임지는 귀염둥이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은 이기림 씨에게 다시금 힘을 내야 하는 이유와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그는 건설현장을 다니며 가족을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강민이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부터 아내 서영선 씨 역시 아르바이트하며 남편에게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녀들이 커갈수록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이기림 씨의 일거리는 갈수록 줄어들었고, 당뇨 증세까지 얻게 되면서 차량 없이 힘든 현장을 찾는다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자재를 싣고 이동할 차량에 대한 아쉬움이 점점 짙어져 갈 무렵, 이기림 씨는 복지관으로부터 기프트카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당장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탓인지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고, 아쉬움 때문인지 차량에 대한 절실함은 갈수록 더해졌습니다.




그로부터 1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기림 씨는 기프트카 시즌4에 다시 지원하게 되었고,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기프트카를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이기림 씨는 이제 오랜 경력을 쌓은 창호 시공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데다, 자재 운반까지 할 수 있게 되어 훨씬 더 나은 수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이기림 씨의 포기할 줄 모르는 굳은 자립 의지와 강한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기림 씨의 단단한 마음의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선 이기림 씨. 이제 잠시 접어두었던 날개를 다시 펴고, 네 아이와 아내 앞에 당당한 가장으로 우뚝 설 시간입니다. 기프트카가 이기림 씨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후기보기 ☞ http://gift-car.kr/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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