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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황기원 씨] 좌절은 그만! 내일을 스스로 개척하다.

2014-03-03 뷰카운트4911 공유카운트1





경북 의성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황기원 씨는 어린 시절, 해가 질 때까지 온 동네를 뛰어놀곤 했습니다. 형제들이 많아서 함께 놀 친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막내여서 형과 누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건강하게 쑥쑥 자라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농사를 짓는 황기원 씨 부모님의 시름은 깊었습니다.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졌고 나중엔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빠듯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황기원 씨가 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집안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형제들은 쑥쑥 자랐고, 농사일은 갈수록 버거워지기만 할 뿐, 수익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8남매와 부모님은 고향 의성을 떠나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아 부산과 서울에 떨어져 살게 되었고, 이미 장성한 형제들은 자기 일을 찾아 각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간 황기원 씨는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활기찬 도시의 모습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황기원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았고, 친구의 소개로 철공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기술을 많이 익혀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한 황기원 씨는 열심히 일을 배워갔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인지 아무도 제대로 된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공장의 허드렛일 밖엔 할 수 없었습니다.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황기원 씨는 철공소를 그만두고 장기적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에 아버지께서 잠시 하셨던 과일 판매업이 떠올랐습니다. 어리지만 아버지가 즐겁게 일하셨던 것이 인상 깊었던 황기원 씨는 과일을 받아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예상대로 일은 황기원 씨의 적성에 아주 잘 맞았습니다. 황기원 씨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손님들을 대할 때는 이야기도 술술 나오고, 표정도 환해졌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황기원 씨는 오히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었고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황기원 씨는 친한 지인과 함께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이후부터는 혼자서 과일을 판매했습니다. 10년 동안 손수레에 과일을 가득 싣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다 보니 어깨와 허리 등에 무리가 가서 온몸 구석구석 성한 곳이 없었지만, 그 어떤 일보다 보람이 컸습니다. 특히 한가득 쌓여있던 과일이 모두 판매되어 텅 빈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황기원 씨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과일 판매로 생활과 마음에 안정을 찾은 황기원 씨는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때마침, 지인이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청소 사업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고, 황기원 씨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빌딩 준공 청소를 전문으로 했던 회사는 초기에는 수익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험 부족 때문인지 수시로 닥쳐오는 회사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적성에도 맞지 않아 회사를 유지하는 일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일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황기원 씨는 회사가 어려워진 후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을 끌었습니다. 과일 판매를 하면서 차곡차곡 모았던 돈을 모두 투자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모두 잃은 황기원 씨는 너무 막막해서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엄두도, 용기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저 하루하루, 건설 현장 일과 이삿짐 나르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아니었고, 실패가 너무 컸기에 쉽게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뼛속까지 절절히 실패의 아픔을 겪고 있을 무렵, 황기원 씨는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순수하고 착한 마음에 이끌렸던 황기원 씨는 곧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황기원 씨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주었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비록 일용직이었지만 더욱 열심히 일했고, 얼마 후 첫째 세훈이가 태어났습니다. 뒤이어 창두와 지훈이까지 태어나자, 황기훈 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일하며 아이들을 보살폈지만, 급작스럽게 닥친 큰아들 세훈이의 교통사고를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세훈이는 청력을 잃고 말았고, 황기원 씨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닥친 사고가 마치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황기원 씨는 세훈이를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보았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청력을 잃은 세훈이는 나이를 더해갈수록 점점 소극적인 아이가 되어갔고, 동생 창두와 지훈이와도 멀어져 갔습니다. 큰아들의 사고로 인한 여파는 황기원 씨 부부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잦은 다툼이 일어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렇듯 끝을 모르는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내는 결국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황기원 씨는 다시 슬픔에 잠겼습니다. 속 깊은 둘째 창두와 셋째 지훈이는 그런 아버지가 더 힘들까 봐 엄마를 찾지도 않았고,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황기원 씨는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황기원 씨는 이전까지 한 번도 집 안 청소와 빨래,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살림을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첫째 세훈이를 효과적으로 돌봐줄 시설로 보낸 후 둘째와 셋째 아이의 양육에 좀 더 신경을 쏟았습니다.
처음에는 둘째 창두를 학교에 보내고 셋째 지훈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이 마치 전쟁을 치르는 듯 힘겹고 정신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능숙해졌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를 확인하면서도 빨래, 청소, 식사준비까지 척척 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황기원 씨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저마다의 방식으로 황기원 씨를 웃게 해주었습니다. 둘째 창두는 의젓하고 속 깊은 형이 되어 동생을 챙기면서 황기원 씨의 힘을 덜어주었고, 막내 지훈이는 활발하고 늘 활짝 웃는 모습으로 황기원 씨에게 언제나 활력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황기원 씨는 큰아들 세훈이 또한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황기원 씨는 이런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번듯하게 키우기 위해 이삿짐센터와 화물차 운전 등 할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다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했던 과일 판매업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당장 생활비가 빠듯한 상황에서 창업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꿈만 꾸고 있던 차에 황기원 씨는 복지관으로부터 기프트카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황기원 씨는 기프트카야말로 자신의 오랜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준비하고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프트카의 주인공이 되어 창업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통 가시밭길이었던 자신의 인생에 이토록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황기원 씨.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여유를 느꼈던 시간이 많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주지 못해 미안하기만 하다는데요. 기프트카를 만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다시 도전하게 된 황기원 씨에게 근심, 걱정을 모두 잊고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를 여러분께서도 응원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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