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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김석준 씨] 우직하게 판 우물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다.

2014-02-03 뷰카운트1225 공유카운트0




부산에서 삼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석준 씨는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덕분에 쾌활하고 구김살 없는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장난끼도 많고 사교성도 뛰어나서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았고, 주도적인 성격 덕에 언제나 골목대장을 도맡으며 활기찬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던 중, 서른한 살이 된 김석준 씨는 조금 특별한 계기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은 동네 주민이었던 김석준 씨의 어머니와 아내 박애순 씨의 어머니는 뒷산에서 운동을 하다가 가까워졌고, 혼기가 찬 자녀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만나게 해주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양가 어머님들의 소개로 만난 김석준 씨와 박애순 씨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꼈고, 두 청춘 남녀의 결혼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애순 씨의 몇몇 주변 사람들은 김석준 씨가 장남에 장손인데다가, 시부모님에 시할머니 등 모셔야 할 어른이 많아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박애순 씨의 결혼 생활은 우려대로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워낙 식구들이 많다 보니, 시부모님의 출근 시간이나 도련님들의 등교 시간, 시할머니의 식사 시간은 제각각 이었고, 그 때문에 하루에 밥을 대 여섯 번씩 차리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명절에는 모든 친척이 큰집인 시댁으로 모이다 보니 정신 없이 일하느라 친정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든든한 남편 김석준 씨가 곁에 있어 아내 박애순 씨는 힘든 줄도 모르고 묵묵히 맏며느리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첫째 주영이와 둘째 태형이가 태어났고, 김석준 씨는 이제 가정 경제 안정을 위해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정착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때마침, 농산물 유통업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지인의 제안을 듣게 되었고, 김석준 씨 부부는 망설임 없이 농산물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김석준 씨는 직접 밭을 찾아 다니며 좋은 농산물들을 골랐고, 그렇게 사온 물건은 도매상에게 납품하거나 경매에 넣었습니다. 한편, 아내 박애순 씨는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남편이 싣고 온 물건들을 팔았습니다. 질 좋고 저렴한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지만, 한곳에 오래 머물기보다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김석준 씨의 체질에는 꼭 맞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방학 중일 때는 일과 동시에 가족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전국 곳곳의 산지에 가서 즐거운 농촌 체험을 하고, 오는 길에는 농산물들을 한 가득 싣고 돌아왔습니다. 김석준 씨 부부는 그 동안 함께 일하느라 아이들을 어머니께 맡겨두었는데, 농산물 판매를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되찾게 된 것 같아 무척 기뻤었다고 합니다. 장사도 워낙 잘 되다 보니 몸은 힘들어도 신바람이 절로 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김석준 씨 부부는 돈도 조금씩 모을 수 있었고, 온몸으로 부딪치며 귀한 경험과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기별로 소비자들이 찾는 과일이나 채소는 무엇인지, 상품별로 가장 질이 좋고 맛이 있는 때는 언제인지 등을 매일 체크하고 노트에 메모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실수하고 있는 것들은 없는지 노트에 적힌 노하우들을 수시로 확인해보면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들을 점검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꼼꼼하고 철저한 김석준 씨에게도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바로 자연재해였습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산물 판매 일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그만큼 어렵습니다. 김석준 씨가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풍수해 보험이 없어서, 밭을 계약해 놓은 상태에서 태풍이 오거나 가뭄?홍수가 들어 농작물에 피해를 보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 해 계약했던 수박밭과 참외밭이 폭우로 물에 잠기면서 김석준 씨는 계약금을 고스란히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몇 차례 피해를 겪으면서 김석준 씨는 적지 않은 금액의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고생과 노력이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졌지만, 김석준 씨 부부는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김석준 씨에게는 아직 젊음이 있었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 있었으며, 또 한참 돌보아야 할 두 아이가 있었기에 다시 살 길을 모색했습니다.
쓰디쓴 실패를 맛보긴 했지만, 여전히 김석준 씨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농산물 판매업이었습니다. 김석준 씨 부부는 중고 트럭을 한 대 사서 제철 농산물을 팔기로 했습니다. 대신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산지와 직접 계약하기보다 도매상을 통해 농산물을 구매했고, 재래시장과 아파트 단지 등을 돌며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김석준 씨는 지역 주민들과 두터운 정을 쌓으며 단골손님들을 만들어갔고, 질 좋고 저렴한 농산물의 반응이 좋아 장사는 꾸준히 잘되어갔습니다.



덕분에 빚도 많이 갚았고, 자녀들을 무사히 대학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온 김석준 씨 부부였기에 자녀들 양육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붓지 못했지만, 자녀들은 누구보다 바르고 훌륭하게 커 주었습니다. 첫째 주영이는 어린 시절부터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습니다. 주영이는 맞벌이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꿈을 키워왔고, 그 바람대로 영어교육과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전문대학 입학을 앞둔 태형이는 졸업하는 대로 취직을 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 부모님과 누나에게 든든한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이런 자녀들이 고마워서 더욱 힘을 낼 수밖에 없다는 김석준 씨는 쉰을 훌쩍 넘긴 지금도 매일 새벽 세 시 반이면 일어나 장사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농산물을 잔뜩 싣고 달려주어야 하는 낡은 차량에 고장이 잦아지면서 적지 않은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10여 년을 김석준 씨와 함께 달려온 낡은 트럭은 한번 고장이 날 때마다 많은 수리비가 들었습니다. 게다가 장거리 운행도 어려워졌고, 물건을 많이 싣는 것은 물론 시동을 거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당연히 벌이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김석준 씨는 "차가 말썽을 부릴 땐 망치로 차를 한 번씩 툭툭 쳐주면 시동이 걸린다"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언제까지고 이런 차로 사업을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전에 남아있던 빚을 어느 정도 갚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빚이 남아있는 김석준 씨에게 새 차량을 마련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는 법. 차량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던 김석준 씨는 복지관을 통해 기프트카를 알게 되었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프트카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기프트카 주인공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고난의 시간을 잘 헤쳐온 김석준 씨는 이제 기프트카와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뇨를 앓고 있는 아내 박애순 씨가 늘 걱정이고, 그런 아내를 편안하게 쉬게 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앞으로 기프트카와 달리며 아내에게도 더 나은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또 기프트카와 함께 항상 웃음꽃이 피어나는 가정을 꾸려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후기보기 ☞ http://gift-car.kr/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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