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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윤주호 씨]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다시 세상 앞에 나서다.

2014-02-03 뷰카운트959 공유카운트0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난 윤주호 씨는 농사꾼의 아들이었습니다. 작은 땅이었지만, 그곳에서 난 농작물로 여섯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농작물의 수확량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결국 윤주호 씨의 가족은 시골집을 정리하고 다른 일을 찾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올라간 서울에서의 생활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한 칸짜리 방에서 온 가족이 다닥다닥 붙어 누워야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던 그 시절,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윤주호 씨는 서울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흙 대신 시멘트 바닥을 걷고, 낮은 건물 대신 높은 빌딩을 지나칠 때마다 자신이 마치 이방인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게다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전부 참아야만 했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움에 대한 결핍까지 더해졌습니다.
공업고등학교의 기계과를 졸업한 윤주호 씨는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곧바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공부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록금을 모을 요량으로 1년 동안 건설현장의 일용직을 비롯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윤주호 씨의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순간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그때라고 합니다. 매일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학원 단과반 수업을 듣고, 아침 7시 반에 부품 공장에 가서 온종일 일을 한 다음, 저녁에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 종합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쏟아지는 졸음에 커피를 사발로 들이키기도 하고, 코피도 많이 흘렸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쁨과 차곡차곡 모이는 등록금을 보면 그저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대학에 진학한 윤주호 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2년간의 학업을 마무리하게 되었고, 군 복무를 하며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윤주호 씨가 처음 했던 일은 주방용품 회사의 매장관리 일이었습니다. 워낙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던 터라 윤주호 씨는 어디서든 싹싹하게 일 잘하는 유능한 사원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착실하게 돈을 모아가던 윤주호 씨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보다는 좀 더 생산적이고, 다른 이들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고심 끝에 퇴사를 결심한 그는 그간 모아두었던 돈을 투자해 작은 화원을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사람 상대하는 일을 즐거워했던 윤주호 씨의 적성에 화원 일은 꼭 들어맞았고, 화원의 꽃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지금의 아내인 이희정 씨는 윤주호 씨가 전에 일했던 전자회사의 선배였습니다. 직장을 다닐 때부터 이희정 씨에게 이미 호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윤주호 씨는 용기가 없어 내내 마음을 전하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화원으로 승승장구하며 자신감 가득했던 그때에 우연히 옛 직장동료인 이희정 씨를 보게 되었고, 그는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꽃다발과 함께 용기를 내어 고백했습니다. 이후 아내와 교제를 시작한 윤주호 씨는 3년간의 만남 끝에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업 또한 날이 갈수록 번창했습니다.



그러던 중 화원이 입점해있던 상가 점포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윤주호 씨는 하는 수없이 가게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화원 사업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무엇보다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윤주호 씨는 낙담하지 않고 자신이 또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 나가기로 한 윤주호 씨는 5가지 종류의 운전면허를 취득하는가 하면, 보험 관련 공부를 하며 보험설계사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달성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윤주호 씨에게 보험 설계사는 최고의 직업이었습니다. 화원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법,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방법을 깨우친 터라 사람을 상대하는 보험 설계사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이는 곧 좋은 실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윤주호 씨는 회사 내에서도 가정에서도 앞으로만 쭉쭉 뻗어 나갔습니다.




윤주호 씨가 남들보다 보험 영업을 월등히 잘해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달 수익의 편차가 크다 보니 효율적인 재정 관리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남들보다 좀 더 앞서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고정적인 수입이 있던 회사를 그만둔 후부터는 수입이 더욱 들쭉날쭉해졌습니다. 소득이 불규칙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신용카드에 의존하게 된 윤주호 씨는 어느덧 카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윤주호 씨는 잦은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고, 담당 의사로부터 뇌에 종양이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수술하면 치유될 수 있다는 말에 주호 씨는 안간힘을 다해 희망을 부여잡았습니다. 집안의 가장이고 기둥인 자신이 절대로 무너져선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서둘러 수술을 받았지만, 병마는 끊임없이 윤주호 씨를 괴롭혔습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되 눈 뒤쪽에 또 다른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윤주호 씨는 불과 3개월 만에 또다시 큰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수술 후유증이었습니다. 워낙 큰 수술이었던 탓에 처음엔 전혀 걷지도 못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고, 꾸준한 재활운동 끝에 지금은 평지를 걷는 것은 물론 운전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몸의 감각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가운데, 치료비는 물론 그사이 생활비까지 고스란히 빚으로 쌓여 그렇지 않아도 어렵던 살림은 갈수록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윤주호 씨 부부에게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셋째 아이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셋째 아이의 탄생으로 윤주호 씨 가족은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윤주호 씨는 그때의 힘겨웠던 시간을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 덕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 정아는 학교에서 각종 상을 휩쓰는 모범생이고 둘째 현아 역시 미술에 재능을 보이며 항상 부모님의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을 보며 윤주호 씨는 더욱 큰 책임감을 느꼈고, 성치 않은 몸으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매일 고용 관련 기관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다행히, 1년 동안 계약직으로 장애인 행정 도우미를 하게 되었지만, 그 일도 계약만료가 되어 더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그저 하루하루 지나가는 날들을 걱정과 한숨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윤주호 씨는 우연한 기회에 기프트카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당시 윤주호 씨의 아내 이희정 씨는 수제 어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윤주호 씨는 그런 아내와 함께 기프트카로 어묵집 창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윤주호 씨 부부는 복지관의 도움을 받아 기프트카 신청서를 제출했고, 얼마 후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굽이굽이 펼쳐졌던 가시밭길을 잘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가족들 덕분이었다고 윤주호 씨는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늘 믿고 지지해주는 아내, 바르고 착하게 크고 있는 세 딸은 윤주호 씨를 일으키고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데요. 굳은 의지로 병마를 이겨내고, 기프트카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윤주호 씨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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