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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장윤정 씨] 꿈을 향한 도전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2014-02-03 뷰카운트5075 공유카운트8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장윤정 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헤어진 후, 장녀로서 엄마의 역할까지 함께 해왔습니다. 일하러 나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젖먹이와 세 살배기 동생을 돌봐야 했고, 설거지며 빨래 같은 온갖 집안일 역시 모두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고작 여섯 살 나이의 아이가 맡기에는 버거운 일이었지만 어린 장윤정 씨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장윤정 씨는 집에서의 힘든 생활을 학교에선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수록 더 밝게, 더 많이 웃었습니다. 꿈을 꾸기엔 암담하고 우울한 현실이었지만 혹시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에 기대어 남몰래 가수의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학창시절, 타고난 끼가 많았던 장윤정 씨는 친구들 앞에서 종종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등 분위기메이커로 불렸습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즐거워하는 반 친구들을 보면 자신감도 생겼고 무척이나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또, 그렇게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 나면 가슴에 응어리진 아픔들을 뱉어낸 듯 속이 후련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게 될 때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장윤정 씨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서둘러 취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적성에 맞진 않았지만, 장윤정 씨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 성실히 직장생활을 해나가며 착실히 살림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한 제과업체에서 일하게 된 장윤정 씨는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연애라 무척이나 서툴렀던 그녀는 배려심 깊고 자상한 남자에게 끌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고, 장윤정 씨는 알토란 같은 두 아이를 얻어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갔습니다.



하지만 부부의 생각만큼 사업은 잘되지 않았습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세탁소, 제과점, 카센터, 커튼 집까지 계속해서 업종을 바꿔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지만, 빚만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사업실패로 재기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남편과 아직 어린 두 아이 사이에서 그녀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장윤정 씨는 고심 끝에 15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모아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보증금 100만 원짜리 원룸에 들어갔어요. 온종일 식당에서 일하고 월급의 절반으로 월세를 냈죠. 그때 둘째 예지가 네 살이었는데, 열살 된 아들 상빈이가 동생을 먹이고 입히고 돌봤어요. 그러다가 숙식제공이 되는 찜질방의 계산대에서 일을 하게 됐죠. 그 뒤로도 반찬 만드는 공장, 떡집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 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일을 하러 다녔지만, 장윤정 씨의 세 식구는 겨우 밥을 굶지 않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 이상을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너무 무리한 탓인지 아랫배에 큰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간 장윤정 씨는 선근종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나가야 하는 일을 빠질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치료비가 부담스러웠기에 아픈 배를 꾹꾹 눌러가며 참아냈습니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어느 날, 장윤정 씨는 손님으로 온 한 무명가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작은 규모이지만 이미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을 몇 보유한 가수협회의 지부장이었습니다. 당시 장윤정 씨가 일하던 떡 가게의 단골손님이었던 그는 그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가수의 꿈을 흘려 듣지 않았습니다. 노래를 하고 싶어 하고, 가끔은 손님들을 위해 구성진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에서 재능을 발견한 그는 장윤정 씨에게 한가지 제안을 해왔습니다.

가수협회에서 사무 일을 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일을 하겠다고 하면 전세보증금을 모을 때까지 작은방 하나를 제공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거문제로 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장윤정 씨에게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었습니다. 게다가 틈틈이 스케줄이 바쁜 가수 대신 공연장에서 노래도 할 수 있고 작은 행사에서 MC도 볼 수 있다니 가수의 꿈에 가까워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장윤정 씨는 기쁜 마음으로 가수협회의 사무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수협회의 일을 시작하게 된 장윤정 씨는 하고 싶었던 노래연습도 더 많이 할 수 있었고, MC를 하는 데 필요한 능력들도 하나씩 갖춰갔습니다. 게다가 행사를 한 번 하고 나면 적게나마 수입이 생겨서, 무엇보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마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무력하던 장윤정 씨의 일상은 금세 활력으로 넘쳐났습니다. 언젠가 꿈을 펼칠 기회가 꼭 한번은 올 거라고 생각했던 그 날이 장윤정 씨에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윤정 씨에게는 그녀의 꿈을 응원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습니다. 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 예지와 상빈이었습니다.



장윤정 씨는 착하고 예쁜 딸 예지와 아들 상빈이의 적극적인 응원 덕분에 마음껏 노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언제나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잘 보살폈던 큰아들 상빈이는 장윤정 씨의 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춤과 노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상빈이는 오디션을 준비하며 연예인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장윤정 씨는 차근차근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없는 형편 때문에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뿐이라고 합니다.



둘째 딸 예지는 많은 공부를 시키지 못했는데도 전 과목에서 골고루 좋은 성적을 받아와 장윤정 씨의 마음을 무척이나 뿌듯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더구나 착실하고 바른 성품에 친구들도 많고 선생님들께 인정받는 학생으로 매 학기 반장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부위의 수술을 받은 장윤정 씨는 자신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해준 두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더욱 많은 활동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음향장비같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들을 실어 옮겨야 하는데, 차가 없다 보니 매번 화물차를 불러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힘들게 번 하루 일당에서 운송비용으로 지출되는 돈은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던 장윤정 씨는 부산 진구청의 희망복지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진행하는 기프트카 캠페인에 참여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경제적 자립을 원하던 장윤정 씨는 홈페이지에 나온 기프트카 주인공들의 사연을 읽어보며, 어쩌면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기프트카 신청서를 작성해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열심히 일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던 장윤정 씨에게 기프트카 주인공이라는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노래가 인생에 커다란 위로였고 힘이었던 장윤정 씨. 장윤정 씨의 오랜 꿈을 실현하는 데 있어 나이란 숫자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높고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 이제는 꿈을 향해 씽씽 달릴 준비를 모두 마친 장윤정 씨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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