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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전용환 씨]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

2014-02-03 뷰카운트1050 공유카운트7





아주 어릴 때부터 전용환 씨는 꽃밭을 맴도는 꿀벌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자유롭게 원하는 꽃을 향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부지런히 꿀을 모아 비어있던 벌집을 꽉꽉 채워가는 것이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전용환 씨 가정에 아버지의 부재는 전용환 씨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아버지 대신 집안의 모든 살림은 어머니의 몫이 되었습니다. 화목하지 않았던 가정 탓에 전용환 씨의 형과 남동생, 이렇게 삼 형제 모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방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닭을 키워서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텃밭 일을 하면서 삼 형제를 키워갔습니다.



전용환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아 했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직접 학비를 벌기로 한 전용환 씨는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을 하며 모자란 금액을 충당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전용환 씨에게 운명과도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꿀벌로 돈을 버는 일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양봉의 큰 매력을 느낀 어린 전용환 씨는 계속해서 이 일을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직 18살밖에 되지 않은 꿈 많던 소년에게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바로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집안이 나아질 리 없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전용환 씨 역시 어릴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전용환 씨는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두며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증세는 조금씩 나아졌지만, 또래 친구들 없이 혼자 지내다 보니 전용환 씨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전용환 씨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 전까지도 전용환 씨는 양봉 일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 이후부터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열정 가득했던 청년 시기의 전용환 씨는 고물수집으로 시작해 웨이터, 퀵서비스 기사, 택시기사, 중국집 배달원, 전단 배포원, 산악 구조대원, 조경사, 심지어 연극배우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해온 전용환 씨는 당시 새로운 도전에 언제나 목말랐다고 합니다.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로이 청년 시절을 보내던 그가 다시 찾은 일은 양봉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중고차와 벌통 27개를 마련한 전용환 씨는 전국을 돌며 양봉하기에 좋은 자리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양봉은 개화시기에 맞춰 어떤 곳에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그 해의 수입이 달라질 수 있다는데요. 그렇게 10년간 양봉 일을 해온 전용환 씨는 어느새 벌통 200개의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생활도 부쩍 여유로워졌고, 양봉 일을 하느라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어머니께 용돈도 많이 부쳐드릴 수 있었습니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꿀벌들은 그 동안 저장해 놓은 꿀을 먹으면서 겨울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타지를 떠돌던 전용환 씨도 고향인 대전에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정월 대보름날에 쥐불놀이를 하던 아이들로 인해 산불이 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산불로 전용환 씨의 벌통 200개는 모두 전소되었고, 전용환 씨는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망연히 재가 된 벌통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10년의 인생을 산불 한 번에 날려버린 전용환 씨는 다시 양봉업을 시작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물론 꿀벌처럼 열심히 일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게 양봉 일이 될지는 항상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당시 전용환 씨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찰나에 어머니의 주선으로 지금의 아내인 누엔티흐엉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그녀는 전용환 씨를 보면서 환하게 웃어주었고 첫인상도 무척 좋았다고 합니다. 예쁜 얼굴에 천사 같은 성격을 가진 아내에게 푹 빠져버린 전용환 씨는 또 한 번의 재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어린 아내가 부담되기도 했지만, 결혼 후에 보여준 아내의 성숙한 태도에 더 많은 위안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중 다음 해에 더욱 큰 경사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된 것이었습니다. 쌍둥이는 가족들과 친척, 주변 분들에게 넘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커갔습니다. 전용환 씨의 아내는 엄마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쌍둥이를 보면서 전용환 씨의 자립에 대한 의지도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자신만을 믿고 머나먼 베트남에서 온 아내와 예쁜 쌍둥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양봉 일 말고는 다른 직업에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전용환 씨지만 당장 몇 푼이라도 벌자는 마음에 무작정 건설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고된 건설현장 일로 전용환 씨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지쳐갔고, 그나마도 장마철과 추운 겨울에는 일이 거의 없어 생활을 꾸려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전용환 씨는 건설현장 일을 하면서도 쌍둥이를 둔 아빠로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새로운 일을 구상했고, 전용환 씨가 선택한 것은 양봉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국을 돌아다니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했고, 벌통을 살 기초자금이 필요했습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그때 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부터 기프트카에 신청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절실한 마음을 담아 기프트카 신청서를 작성한 전용환 씨는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프트카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정말 펄쩍 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는 전용환 씨. 그는 겨울이 끝나가는 2월까지는 양봉과 관련된 기술 서적들을 읽으면서 기초를 탄탄히 쌓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기프트카를 받고 일을 시작할 수 있는 3월이 오면 전용환 씨는 또다시 꽃의 개화시기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전용환 씨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는 집에 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봐도 부족한 아내와 쌍둥이를 가끔 봐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두 쌍둥이를 키울 아내를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용환 씨는 부지런한 꿀벌처럼 열심히 일해 집안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채울 수 있는 남편이 되겠다면서 아내에게 힘들어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아내 누엔티흐엉 씨는 쌍둥이를 잘 돌볼 테니 다치지 말고 매주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라며 남편을 응원했습니다. 달콤한 꿀을 먹기 위해선 부지런한 꿀벌이 있어야 하듯,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전용환 씨의 가정에 필요한 것은 기다림과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전용환 씨의 가정에 꽃피는 봄이 오기를 기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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