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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야폿리자 씨] 함께 심은 사랑의 씨앗 한국의 정으로 피어나다.

2014-01-02 뷰카운트462 공유카운트0





필리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야폿리자 씨는 어렸을 때부터 생활력이 강해 주위 사람들에게 똑순이로 불렸습니다.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 형편으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에 아주 적은 보수의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야폿리자 씨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보다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어린 동생들을 살피느라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야폿리자 씨의 외삼촌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학교에 다니게 해 주기 위해 야폿리자 씨를 마닐라로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을 따라 마닐라로 건너간 어린 야폿리자 씨는 이제부터는 마음 편히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잔뜩 부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외삼촌 댁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야폿리자 씨는 학교가 아닌 약국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자신의 독립을 위해 돈을 번다고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씨 좋은 약사 선생님을 만나 약국 일을 배우며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순탄한 시간도 잠시, 약국이 문을 닫게 되면서 야풋리자 씨는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닐라에서의 여유롭고 행복했던 시간을 잊지 못했던 야폿리자 씨는 고향으로 가던 길을 돌려 다시 마닐라로 향했고, 그곳에서 운명과도 같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폿리자 씨는 남편을 처음 만나던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딱 떨어지는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를 차려 입고 수줍게 걸어오던 남편 김춘하 씨를 보자마자 야폿리자 씨는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남편 김춘하 씨는 두 사람이 인연으로 맺어질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처음 필리핀에서 야폿리자 씨를 보았을 때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야폿리자 씨를 본 김춘하 씨는 마음 한편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그녀의 눈물이 김춘하 씨의 마음에 닿았던 걸까요? 김춘하 씨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야폿리자 씨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합니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 김춘하 씨는 이윽고 야폿리자 씨를 한국으로 초청하고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운명은 기적처럼 한국에서 다시 이어졌고, 야폿리자 씨의 인생도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만난 김춘하 씨는 필리핀에서보다 한층 더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씨와 자상한 성격은 야폿리자 씨의 마음을 금세 흔들어놓았고, 곧 삶의 터전을 바꿔서라도 함께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꿈꾸며 백년가약을 맺은 야폿리자 씨.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기대만큼 달콤하지는 않았습니다. 결혼 후 신혼생활을 시작한 강원도의 한 마을에서 두 사람은 모두에게 관심거리가 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외국인의 방문에 동네 사람들은 야풋리자 씨를 보며 익숙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런 시선을 받아본 적 없었던 야폿리자 씨는 넘치는 관심에 큰 부담을 느꼈고, 그녀의 마음과 행동도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영원히 닫혀 있을 것만 같았던 야폿리자 씨의 마음은 새 생명이 찾아오면서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첫째 동빈이의 탄생은 야폿리자 씨에게 용기가 되었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게 해 주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닫혀있던 그녀의 마음을 녹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주지를 현재 살고 있는 원주로 옮기면서 야폿리자 씨는 더욱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그녀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야폿리자 씨에겐 세 명의 아이가 더 생겼고 그녀의 가족은 여섯 식구가 되었습니다.
식구가 늘어나면서 야폿리자 씨의 책임감은 더 무거워졌지만, 그만큼의 기쁨도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행복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그녀의 인생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평소 신장이 좋지 않았던 남편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 두 다리와 얼굴이 퉁퉁 부어 고통스러워하는 남편 김춘하 씨를 발견한 그녀는 남편을 데리고 급히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다름 아닌 신부전증. 이후로도 계속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당시 담당 의사는 남편이 길게는 10년, 짧게는 7년 정도를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야폿리자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깜깜해진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야폿리자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위기는 오히려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성큼 다가서기로 마음먹은 야폿리자 씨는 어렸을 때 동생들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위해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건강은 조금씩 호전되어갔지만, 여전히 꾸준한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더군다나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야폿리자 씨는 곧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고향 필리핀에서처럼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 야풋리자 씨는 복지기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다 그녀의 적극적인 자립의지를 본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야폿리자 씨에게 기프트카를 소개해주었고, 야폿리자 씨는 그날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기프트카를 통해 함께 정을 나눠온 이웃 사람들과 한국인들에게 필리핀 음식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심사를 통해 기프트카 주인공에 선정된 야폿리자 씨.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나고자 도전을 시작한 그녀에게 기프트카는 한국에서 느낀 또 하나의 따스한 '정'이었습니다.



혼자 시련을 헤쳐나가는 야폿리자 씨를 바라보며 남편 김춘하 씨는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고 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야폿리자 씨가 느꼈던 차가운 시선을 또다시 받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긍정의 기운이 가득한 야폿리자 씨라면 힘든 일이 있어도 웃으며 잘해낼 것을 알기에, 걱정은 뒤로하고 그녀의 사업을 열심히 응원해 줄 생각이라고 합니다. 야폿리자 씨도 힘들 때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가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시련이 찾아올 때, 어떤 사람들은 힘든 상황을 탓하며 주저앉아버리고 또 누군가는 멈추지 않고 시련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시련은 언제나 헤쳐나가기 어려운 법이겠죠. 그러나 야폿리자 씨의 가족을 보고 있으면 시련에 대처하는 가장 완벽한 자세가 무엇인지 곧 알게 됩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죠. 나를 나보다 더 아껴주는 가족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야폿리자 씨 가족. 여러분도 사랑으로 똘똘 뭉친 이 가족의 앞날을 함께 응원해주세요!


후기보기 ☞ http://gift-car.kr/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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