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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임명수 씨] 싱싱한 젊음과 뜨거운 가슴으로 성난 파도 위를 뛰어오르다.

2014-01-02 뷰카운트530 공유카운트0





임명수 씨가 4살이 되던 해, 일찍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옥수수 장사를 하며 홀로 5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나이의 어린 임명수 씨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종일 시장통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다 온 어머니를 붙잡고 안아달라고 떼를 썼고, 어머니는 그런 임명수 씨를 안고 고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임명수 씨는 그때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합니다.




유독 어머니를 사랑하고 생각하던 임명수 씨는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산 너머에서 장사하는 어머니를 찾아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임명수 씨는 힘든 어머니를 웃게 해드리고 싶어 집안 살림을 열심히 도와드렸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집안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도와 일찍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임명수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택시기사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27살의 임명수 씨는 3년이 넘는 택시기사 생활을 통해 꽤 많은 돈을 저축하게 되었습니다. 택시 기사 일은 밤낮이 바뀌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지만, 어머님께 용돈도 드릴 수 있을 만큼 가정이 안정되어 가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더욱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던 중 개인 차량을 구입한 임명수 씨는 친한 지인에게 한 번밖에 타보지 않은 새 차를 빌려주었고, 그날 큰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임명수 씨는 한 달 동안 택시 영업도 하지 못하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다녀야만 했습니다. 결국, 카드대출까지 받아 합의금을 마련해 일은 수습할 수 있었지만, 마음은 텅텅 비어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다시 택시기사 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조그마한 술집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장사도 잘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초보 창업자였던 임명수 씨는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세금은 어떻게 내는지 등 모르는 것 투성이인지라 자금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고, 그렇게 첫 창업은 실패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매출부진으로 사업을 접은 임명수 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인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지인을 따라 임명수 씨가 찾아간 곳은 의류, 신발 등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었습니다. 자신을 수족처럼 아껴주셨던 사장님과 함께 열심히 물류 창고 관리하는 일을 맡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마저 부도가 나며 그만두게 되었고, 서울에서 한동안 방황을 하던 중 새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 전주로 돌아간 임명수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생선판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생선판매 비수기에도 각종 나물과 참외, 사과, 수박 등 계절과일이나 채소를 판매했고, 들쭉날쭉했던 수입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평균 소득은 월 150만 원 정도였지만, 이제껏 해왔던 일들과는 달리 훨씬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임명수씨는 하루 장사를 끝내고 나면 목이 쉴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던 임명수 씨는 급작스럽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임명수 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심한 가슴 통증과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요. 쓰러진 직후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병원에서도 특정한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계속된 치료와 상담을 거친 후 내려진 결론은 '과로와 우울증으로 인한 가슴 통증'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일을 하며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지만, 몸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임명수 씨는 어머니의 만류로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제 몸을 돌보지 않았던 탓에 장사하던 중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죠. 저도 일을 하고 있던 터라 아들의 몸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 임명수 씨는 거의 3년 동안 장사를 하지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임명수 씨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때쯤, 이미 임명수 씨의 형제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머님만을 모시며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임명수 씨의 마음도 비교적 편안해졌고 하루빨리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임명수 씨는 지인으로부터 99년식 트럭을 외상으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생선판매를 다시 시작했고 예상외로 성과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차량이 문제였습니다. 200만 원어치의 물건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려오던 트럭이 그만 고장 나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미 살 때부터 문제가 많았던 트럭을 100만 원이나 되는 수리비를 들여 고쳤지만, 싣고 오던 물건은 이미 상한 후였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되면서 냉장차량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차량을 알아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차량문제로 시장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지다 보니 고정자리를 잡지 못해 판매는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임명수 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판매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요? 마침 근처에서 청과물을 판매하는 지인으로부터 기프트카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프트카를 알게 되었고, 꼭 신청해야겠다고 다짐한 임명수 씨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찾아가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적극적인 자립의지로 기프트카 주인공이 되어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된 임명수 씨. 이번 사업은 꼭 성공해서 어머니의 바람대로 5년 안에 결혼까지 하고 싶다는데요. 지금까지 가난을 대물림 받아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가난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꼭 성공해서 결혼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합니다.



임명수 씨의 어머니는 올해 마흔두 살이 되는 아들이 하루빨리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요. 언젠가 스치는 말로 제주도에 놀러 가보고 싶다 하셨던 어머님의 말씀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해두었던 임명수 씨는 기프트카로 성공해서 꼭 어머니께 비행기를 태워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기프트카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임명수 씨. 기프트카를 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점포를 얻게 된 것과 다름없다며 앞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생선을 판매할 수 있어 기쁘고, 더욱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평생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임명수 씨의 착한 성품이 밝은 빛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프트카가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후기보기 ☞ http://gift-car.kr/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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