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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문종대 씨] 아늑한 보금자리 만드는 냉난방기 고수를 꿈꾸다.

2013-10-01 뷰카운트1109 공유카운트0




“Anh t?t lam sao는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란 뜻이에요”
베트남에서 온 부이티콴 씨는 쌍둥이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능력시험 상급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서툰 한국어이지만 눈짓과 몸짓만으로도 아이들이 척하고 알아듣기 때문에 한국생활이 한결 수월하다고 말하는데요. 문종대 씨는 아내와 아이들이 서로 돕고 아껴주기까지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말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가족의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문종대 씨의 모습을 살짝 엿보러 가볼까요?

전북 정읍이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 때 서울의 이름난 건물들을 견학하고 내려온 후 건축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넓고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작지만 사람냄새가 나는 집을 짓고 싶었다고 합니다. 대학에 진학한 문종대 씨는 본격적으로 건축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건축가가 되기 데 필요한 건축사자격증, 건축기사자격증을 취득했고 건축 서적들을 보며 꿈의 집을 그려갔습니다. 그런데 꿈에 닿기 직전, 집안 사정으로 인해 대학 졸업장을 따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하게 됩니다. 집의 어려운 살림을 핑계 삼고 싶지 않았던 종대 씨는 꾸준히 건축회사의 문을 두드렸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건축회사에 입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건축 분야에 염증을 느낀 문종대 씨는 10년간 모아놓은 돈으로 PC방 체인 사업을 결심하게 됩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PC방 사업을 시작한 문종대 씨는 대박을 터트렸고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PC방의 이중 계약 사기사건에 휘말려 돈은 물론 가정까지 잃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좌절할 시간도 없이 빚더미에 앉게 된 문종대 씨는 결국 개인파산 신청을 하고 지인의 도움으로 LCD 반도체 공장에 취업을 합니다. 72시간 내내 공장에 묶여 줄곧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지만, 머리는 멍했고 몸은 몇 번이나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분들을 보면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고 합니다.

“그땐 술이 없으면 잠을 못 잤어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요. 그런데 저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도 아무 불평 없이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사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그 동안 제가 얼마나 나태한 삶을 살았는지 반성하게 됐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힘을 내겠다고 저 스스로와 약속까지 했습니다.”



“19살이었던 아내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베트남에서의 일이 얼마 남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무작정 고백을 했습니다. 엄마의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당신이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부이티콴 씨는 그의 프러포즈에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그의 진실한 마음과 남자다움에 이끌려 미래를 약속하게 됩니다. 2011년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잘 통하는 부부와는 달리 쌍둥이와 새엄마 부이티콴 씨 사이는 처음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예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건강가족지원센터에 도움의 손길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가족간의 갈등이 심해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저는 무슨 방법이든 찾아야만 했습니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 아니면, 딸 아이의 이른 사춘기 때문이었을까요? 아이들과 아내와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됩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느낌으로 살아야 했던 부이티콴 씨, 새엄마를 인정하지 못하고 삐뚤어져만 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종대 씨는 무척이나 괴로웠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임신까지 한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더 무너져 내리기 전 쌍둥이를 전주에 맡긴 종대 씨는 부이티콴 씨와 베트남행을 결심합니다. 자신을 떠나려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고, 쌍둥이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 6개월간의 베트남 생활을 통해 문종대 씨는 아내가 한국에서 생각하고 느끼던 것들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고 부이티콴 씨 역시 남편 종대 씨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년을 계획했던 베트남 생활이 6개월이나 단축된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이 이미 하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 사람은 2012년 6월, 막내 세라와 함께 한국땅을 밟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문종대 씨 부부는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향합니다. 부산에 온 이유는 또 하나 있었습니다. 직업전문학교에서 전기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마친 종대 씨는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친척의 도움으로 에어컨 설치와 유지 보수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종대 씨는 일을 하느라 정신 없이 보냈다고 합니다. 하루에 5대 이상의 에어컨을 설치할 정도로 바빴고, 3~4개월 동안 이어진 바쁜 일상에서 종대 씨 얼굴은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가장 좋아한 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새엄마와의 관계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요. 과거의 갈등을 까맣게 잊은 듯 함께 눈을 맞추며 웃는 세 사람을 볼 때면 종대 씨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고 합니다. 아내 역시 막내 세라를 낳고 한국어능력시험, 홈패션강사자격증, 한국-베트남어 통번역사, 의료코디네이터 등의 자격증을 습득하며 사회에 나올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습니다. 종대 씨는 공부 욕심 많은 아내를 위해 문제집 채점도 해주고 필요한 책도 직접 골라주며 자상한 남편 노릇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답니다.


가정문제가 해결된 후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됐다는 종대 씨는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에어컨 설치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다닐 차가 없어 일을 놓친 것이 한 두건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인터넷으로 접한 현대자동차그룹의 기프트카 소식에 그는 반신반의하며 용기를 내 지원해 보았습니다. 서류 심사 합격통보가 왔고 긴장되는 면접심사를 마친 그의 바람은 마법처럼 현실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조금 더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프트카를 만난 후 문종대 씨는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실패의 연속이었던 인생에서 성공의 인생으로 가는 문을 통과한 것이라고요. 다섯 가족을 위해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만들어나갈 문종대 씨에게 희망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프트카가 함께 응원합니다.


후기보기 ☞ http://www.gift-car.kr/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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